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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행옴부즈맨칼럼>세계적 특종 거둔 등소평사망 사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덩샤오핑(鄧小平)이 사망하던 날 나는 중국에 있었다.20일 새벽의 공식발표를 듣고,조간신문 마감시간 이후의 제작애로를 아는 나로서는 우리나라 신문들이 어떻게 대처했을까 하는 걱정을 하면서 어쩔 수 없는 직업의식 발동에 스스로 실소

(失笑)했다.

그런데 그날 중앙일보를 펼쳐든 나는 그야말로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덩샤오핑의 사망을 완전 특종으로,그것도 특집까지 곁들여 보도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특종기사란 세계적 규모의 것이기 때문에 기자의 입장에서는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런 뜻에서도 이번 특종은 기자에게 있어 더할 수 없는 보람이요,중앙일보가 더욱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데 지렛대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특종은 요행아닌 노력

그런데 특종기사를 쓰느냐,못 쓰느냐와 관련해서는 결과론적으로 운(運)과 불운(不運)으로 구분해서 말하는 사람들이 신문기자 사회에서는 적잖이 있는 모양이다.다시 말해 운이 좋아서 특종을 했고,운이 나쁘면 특종할수 없다는 이야기다.그

러나 나는 이런 이야기나 입론(立論)에 동의하지 않는다.

흔히 운이라고 하면 어떤 주어진 숙명(宿命)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운이라는 것은 한자의 운(運)이 뜻하는 대로'움직이는 것'이지 정(定)해진 것이 아니다.따라서 운이라는 글자는 노력하고 움직이면 얼마든지 변하고 발전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노력한 결과로서의 운은 그 사람의 마음자리가 바르게 서있는한 실패할 까닭이 없으며,그 결과로서의 특종기사가 발굴됐다면 그것은 분명 운이라고 할 수 있다.이 경우의 운이 요행이나 이른바 운수소관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깨닫지

않거나 못한다면 그것은 정녕 안타까운 일일 터다.

덩샤오핑의 죽음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신문기자에게 있어 예고된 기사는 대개 두가지 반응으로 나타난다.하나는 예고된 것이 언제 현실화,또는 발표될 것인가에 대한 연속된 긴장으로서의 반응이다.

또 하나는 예고된 것이기 때문에 긴장없이 발표만을 기다리는 경우다.이 두가지 반응 가운데 어떤 것이 신문기자의 올바른 자세인가는 구태여 지적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鄧사망전후 세가지 움직임

이번의 덩샤오핑 사망기사만 하더라도 현지 기자들이 뉴스의 촉각을

예민하게 하고 있었더라면 얼마든지 특종이 가능했다는게 나의

판단이다.현지에서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19일의 鄧사망시간 전후에

적어도 세가지의 큰 움직임이 있었으며,

민감한 기자라면 그런 움직임에서 무엇인가 낌새를 알아차려야 했다는

지적이었다.

그 움직임의 첫째는 죽은 시간이 현지시간 오후 9시8분(한국시간

10시8분)이었는데 중국의 중앙TV(CCTV)는 鄧의 사망직후인 오후10시

정규방송프로를 중단하고 鄧을 찬양하는 대장정(大長征)시대의 기록영화를

방영했다고 한다.둘째

는 鄧의 사망시간을 전후해 천안문 광장에서 그가 입원한 병원까지의 길

주변에 비상병력이 동원돼 배치됐다는 사실이다.셋째는 그 시간을 전후해

중국의 고관들을 태운 수많은 승용차들이 이례적으로,그리고 집단적으로

천안문과 병원사이를 질주

했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에 띄웠더라면

만약 이런 움직임을 제대로 파악했더라면 특종을 하는게 그리 어렵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그런데 결과적으로 특종을 한 것은

중앙일보뿐이었다.중앙일보의 특종은 기사취재와 송고시간을 중심으로

따진다면 CNN이나 NHK보다 훨씬

앞선 것이었다.만약 중앙일보가 기사송고와 함께 그것을 전자신문으로

인터넷에 접속했더라면 세계에서 최초,최대의 특종으로 공인받았을

것이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것이 그렇게 되지 못했다.이것은 이른바

속보(速報)경쟁에서의 전파(電波)매체

와 인쇄(印刷)매체의 특징과 한계를 말해 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흔히 신문은 인쇄매체이기 때문에 뉴스의 송고와 편집,인쇄에서 어쩔수

없이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그렇기 때문에 같은 시간에 같은 뉴스를

취급할 경우 속보성(速報性)에서는 신문이 방송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특종기사의 경우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그것은 신문이 방송보다

얼마든지 우위에 있을 수 있으며,경우에 따라서는 방송이 신문을 인용치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된다.

중앙일보의 세계적인 대특종은 인터넷에 재빠르게 접속시키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함께 국내적인 대특종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게 됐다.한데

특종기사는 그것이 대특종일수록 그 후속기사나 해설,또는 특집에서

완벽을 기하는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해두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번 덩샤오핑의 죽음에서 위대한 지도자란 사생관(死生觀)이

올바로 서있지 않고서는 이런 반열에 들 수 없음을 새삼스럽게

느꼈다.鄧이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는'기불가실 시불재래(機不可失

時不再來)'란 말이 머리속에서 뱅뱅돈다. 이규행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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