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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프라를세우자>18. 인사동 살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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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의 인사동이 위기를 맞고 있다.몇년째 이어진 극심한 불황으로 화랑이 하나 둘 문을 닫으면서 그 자리를 빵집과 국적 불명의 카페가 대신하고 있다.

인사동 네거리에 버티고 있던 덕원갤러리 건물 1층에 은행이 들어서고 그 맞은편 골동상도 제과점으로 바뀌는등 인사동 중심가가 신세대 고객을 위한 편의시설 상권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인사동 사람들은“인사동이 전통을 상품화한 유흥가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내비치고 있다.

사실'인사동 위기설'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것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70년대 중반 인사동 골목을 주름잡던 2백50여개의 골동상들이 정부의 중과세 조치로 대부분 인사동을 떠난 후'인사동은 술집과 밥집만이 사람을 모으는 밤의

거리'로 더 유명해진 시기도 있었다.

이후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치르면서 외국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서울의 유일한 전통적인 동네로 인사동을 지목하고'전통문화의 거리'로 정비한다는 계획이 서울시에 의해 마련되기도 했다.

서울시는 85,86,88,91년 모두 네차례나'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 정비안'을 발표했다.네번 모두 도로와 가로등 정비등 거의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수 있듯 이 계획은 매번 구상에 그쳤을뿐 큰 성과를 올리지 못했

다.인사동 주민과 상인들로 구성된 친목회 성격의'인사전통문화보존회'도 회장이 바뀔 때마다'차없는 거리'와'문화특구'등을 공약으로 내세워 인사동 살리기를 시도했지만 이 역시 행정적 문제로 빈말로 끝나고 말았다.

이처럼'위기설'이 20여년동안 끊이지 않고 제기됐음에도 지난해말부터 터져나오기 시작한 위기설이 전과 다른 무게를 싣고 있는 것은 이유가 있다.

한두개 화랑이 카페나 옷가게로 바뀌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땅값이 오르면서 영세한 문화관련 업소가 더이상 버티기 어렵게 된 환경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아직도 크고 작은 화랑이 60여개 모여 있고 골동상과 표구상.필방등 미술관련 업소만 2백50여개가 있지만 중심가는 내주고 점차 골목 안으로 밀려들어가는 양상을 띠고 있다.대략 10평 정도면 위치에 따라 보증금 2천만~5천만원,월세

1백만~2백만원으로 평당 가격으로 치면 강남과 비교해도 비싼 수준이다.임대료가 오르면 유흥지역으로 빠르게 변한다는 것은 앞서 대학로의 예에서도 본대로 쉽게 알 수 있다.인사동의 위기가 거론되는 것은 바로 이같은 맥락에서다.

지난해말 카페로 바뀐 현화랑등 경영이 어려워 화랑을 그만두고 한시적으로 먹는 장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화랑보다 제과점등으로 업종 변경후 팔면 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업종을 바꾼 후 매매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인사동 사람들이 걱정하는 또 한가지 이유는 고층건물들이 인사동 고유의 옛마을로서의 정체성을 망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이미 인사동에는 문화와 관련없는 고층 사무실 빌딩이 많은데다 안국동 로터리에서 인사동 길로 들어서는 초입

에 있는 옛 민정당사 자리마저 고층 빌딩이 들어서게 돼 이런 걱정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90년 옛 민정당사 이전설이 돌면서 1천6백평에 이르는 이 건물을 문화공간으로 사용하자는 의견이 나왔었다.

민정당사 때문에 차없는 거리로 만들기에 어려움을 겪었던 인사동 사람들은 여러 면에서 인사동 발전에 걸림돌이 됐던 당사를 문화시설로 사용해 인사동에 활력을 넣자고 주장했으나 일반 기업에 매각돼 이 희망은 사라졌다.

최근 내놓은 것으로 알려진,인사동 중심가에 위치한 4백50평 규모의 식당'영빈가든'을 인사전통문화회관으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곳에 문화와 관련없는 엉뚱한 고층건물이 들어선다면 인사동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인사전통문화보존회 이호재(가나화랑 대표)회장은“시가 1백20억원에 달하는 이 건물을 시와 구 예산으로 사들여 운영하면 문화명소로서의 기

능뿐만 아니라 이의 몇배에 달하는 수익을 올릴 자신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화에 대한 남다른 배려없이는 모든 것이 경제논리로 돌아가고 있는 인사동에서 이 방안을 현실화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은 누구나 하고 있다.

인사동이 이같은 막다른 위기에 다다른데는 젊은세대의 해악이 크다는 지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인사동은 분명 신촌과 다르고 대학로와도 다른 독특한 그 무엇이 있는데 이들이 메뚜기떼처럼 몰려다니면서 분위기를 망친다는 것이다.

전통 찻집이 어울릴법한 자리에 젊은 취향의 감각적인 카페가 생기고 외국인이 펼쳐놓는 액세서리 노점상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는 젊은이의 영향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정부는 문화정책을 이야기하고 서울시.종로구등 각 자치단체들도 나름대로 특색있는 문화장소를 만들고자 노력한다면서도 전통이라는 장점과 문화명소로서의 잠재성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인사동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인사동을 문화특구로 지정해 문화관련 업소에 우선권을 주거나 세제 혜택 방안을 마련해 자연스럽게 인사동에 인사동다운 문화가 넘치도록 해야 최소한의 문화유산을 후손에게 남기는 당대인들이 될 것이다. 〈안혜리 기자〉

<사진설명>

화랑과 골동상.필방등이 밀집해 있는 문화의 거리 인사동이 최근 정체성

상실의 위기에 부닥쳐 있다.아직은 문화관련 업소가 인사동을 대표하지만

중심가가 점차 젊은이 취향의 제과점과 카페로 점령되는 추세에 있어

전통마을 인사동 붕괴의 옆존뗌?낳고 있다. 〈주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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