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동 교수의 '세계 경제의 핵 화교' ⑦] 중국 경제성장의 장본인, 화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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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거인, 중국을 깨우지 말라. 중국이 잠에서 깨어나면 전 세계가 떨게 될 것이다”
일찍이 나폴레옹이 중국을 두고 한 소리이다. 얼핏 우스갯소리로 들리는 이 말은 오늘날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나폴레옹 시대 잠자는 거인이었던 중국이 이제 깨어나고 있다.

최근 전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성장률이 낮아지기 전까지 중국은 2003년부터 줄곧 전년도 대비 GDP 성장률이 10% 이상의 수치를 기록하면서 급격한 상향 곡선을 그렸다. 이미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GDP 총액이 세계 4위에 이른다. 외환보유고는 2006년에 1조 달러를 돌파하여 올해 6월에는 1조8,088억 달러를 기록해 외환보유고 세계 1위를 압도적인 수치로 굳혔다.

중국의 이러한 급성장을 가능케 한, 즉 중국의 잠을 깨운 자명종은 바로 화교다. 화교들을 엮는 가장 근본적인 힘은 바로 모국인 중국이다. 민족, 언어, 문화로 뭉친 그들은 비록 몸은 세계에 뻗어 나가있지만, 마음은 중국을 향해 있었다.

화교들은 각각의 나라에서 성장해 다시 자신들의 모국인 중국에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중국에 투자된 외국인 직접 투자액 약 6천억 달러 중 4천억 달러가 화교가 투자한 자본이다. 중국에 투자되는 외국 자본의 약 65%를 화교가 맡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화교들의 애국심에서 온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꼭 애국심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화교들의 경제 수완은 유태인들과 비교될 정도로 대단하다. 단지 모국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대규모의 자본이 움직인 것은 아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화교가 중국을 자신의 고향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중국 역시 화교를 동포로 여기고 화교들을 중시했이다.

중국 공화제 창시자인 쑨원(孫文)은 “화교는 혁명의 어머니(華僑爲革命之母)”라며 신해혁명의 공로를 화교에게 돌렸고, 마오쩌둥(毛澤東)도 화교들을 “중국 공산당의 제2의 생명선”이라 하여 국가 건설에 화교들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현대중국의 지도자들은 화교들을 중요시했이고 그 인식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중국은 공업, 농업, 국방, 기술 등 4개 분야를 발전시킨다는 ‘4개 현대화’ 달성은 화교들에게 달려있다고 보고 있다. 화교들과의 교류를 강화하기 위해 전세계의 각종 화교 네트워크를 적극 지원하고 화교들의 투자를 우대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같이 화교들이 중국의 발전 가능성에 눈뜨고 중국이 화교들의 중요성을 인식한 ‘찰떡궁합’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현재 중국경제를 만들어 낸 것이다.

박정동 인천대 중국학연구소장

‘중화민족’ 강조…연대 강화
중국의 화교정책

전 세계로 뻗어있는 화교의 고향은 중국이다. 화교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와 함께해 왔으며 함께 성장해 왔다.

중국화교사무위원회에서 공포한 ‘해외 화교 업무지침에 관하여(關于海外僑民工作的指針)’에서는 “화교는 우리나라 인민 중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을 소지한 해외거주자”라 했이고, 또 화교사무위원회는 “국외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공민은 모두 화교”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는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는 중국의 입장에서 중국인과 화교의 차이를 국내거주와 국외거주의 차이로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렇게 중국과 화교를 따로 분리시키지 않음으로써 화교와의 연대를 강화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중국의 화교정책은 건국 초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국 통일전선의 주요 역량으로 삼고 있다.
신해혁명의 지도자인 쑨원(孫文)은 혁명 당시 화교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 1921년 대통령이 되어 광둥(廣東)정부가 수립되었을 때 화교들을 위한 ‘화무국(華務局)’을 설치했다.
1926년에는 국민정부에 화무위원회(華務委員會)가 설치돼 화교들의 거주국에서의 평등한 대우와 교육, 투자보호 등의 정책을 결정했다.
1949년 탄생된 중국공산당 정부 역시 화교를 중요시 여겨 경제적, 정치적 단결을 강화해 나갔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극좌세력들이 화교정책을 비판하면서 화교들을 부르주아로 몰아 경제적, 정치적으로 배척하고 탄압했지만 다시 문화대혁명 이후 기존의 화교정책을 회복했다.

문화대혁명으로 인한 불안정한 국내를 정비하고 현대화 추진을 위하여 화교들의 두뇌유치가 시급해졌던 것이다. 하지만 문화대혁명의 여파가 그 이후로도 계속되어 화교정책을 실천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중국의 화교정책이 본격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한 것은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의 10개년 경제계획부터다.

10개년 경제계획의 투자총액은 연 간 약 600억 원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화교자본의 유치가 절실했다. 화교정책의 중점을 낙후된 중국의 공업, 농업, 국방, 기술 4개 분야의 발전, 즉 ‘4개 현대화’ 달성을 위한 방향으로 집중했다.

현재 중국의 화교정책에서 재미있는 점은 현지 국적 취득을 권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급적 현지의 국적을 취득하여 안정적으로 살도록 하라는 취지다.
동시에 비록 중국 국적이 아니지만, ‘중화민족’으로서 일체감을 고양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현지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화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데도 적극적으로 나서, 화교들이 해외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중국경제 발전을 위해 화교들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우대정책을 펼치고 있다. 화교들의 재산, 투자에 관한 특별 법률 등을 제정하고 화교학교 건설 자금원조 등의 법률을 제정하여 화교들의 모국 투자와 국내 귀국 화교들의 투자 환경 개선에 힘쓰고 있다.

글=박정동 인천대 중국학연구소장 / 이승훈 연구원(www.uic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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