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를움직이는사람들>50.끝-금강.고려화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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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맡은 자리의 주인이 되라.'

서울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 옆에 위치한 KCC(금강.고려화학)그룹에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액자가 사무실 곳곳에 걸려있다.정상영(鄭相永.61)그룹회장이 평소 강조하는 이 말은 임직원들의 회사생활 지침서 역할을 하고 있다.학력이나 출신

학과.직급등에 상관말고 있는 자리에서'주인의식'을 갖고 회사생활을 해야 개인도 발전하고 회사도 큰다는 생각이다.

鄭회장은 정주영(鄭周永)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막내동생.동국대 1학년에 재학중이던 58년 22세의 나이에 금강스레트공업㈜을 창업,39년만인 지난해 5개 계열사에 매출 1조3천억원,종업원 5천6백명 규모의 KCC그룹으로 성장시켰다.이

과정에서 현대그룹의 도움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사업을 해왔다고 한다.때문에 그는“맏형이 하는 현대 덕분에 회사를 키웠다”는 말을 싫어한다.

맏형 정주영씨와 닮은꼴

鄭회장은 현대가 도움이 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득반 실반(得半 失半)'이란 말로 현대와의 관계를 스스로 정의한다.지금도 현대에서 따오는 영업물량 비중이 3%밖에 안되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고 말한다.

鄭회장은 그러나 사업 스타일면에서는 정주영씨 일가 특유의 뚝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직원들과 격의없이 어울리는 소탈함과 소박함이 있는가 하면,불도저같은 추진력도 가졌다.어느 기업인 못지 않게 현장을 많이 돌아다니는'현장파

'이기도 하다.

창업당시 그를 지켜본 사람들은“한창 놀 젊은 나이에 공장 구석에서

잠자고 새벽부터 일하는 독종”이라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실제

창업당시 4시간이상 자본 적이 없다고 鄭회장은 회고한다.

60년대 농어촌주택사업용 슬레이트로 기반을 다진 KCC는 70년대 중반

에너지파동 때는 단열재사업으로,중동붐 때는 건설사업으로 사세를 더욱

키웠다.74년엔 페인트업체인 고려화학을 설립,지금의 금강.고려화학

양사를 주력으로 한 KC

C그룹의 틀을 갖췄다.

지난해엔 계열사의 영문 이름을 따서'KCC그룹'이라는 새로운 그룹명을

정했다.그러나 鄭회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은 지금도'그룹'으로 불리길 썩

좋아하지 않는다.그냥'KCC'로 불리길 원한다.

鄭회장은“KCC그룹을 세계굴지의'화학을 응용한 건축자재및 공업용 자재

전문그룹'으로 키우겠다”고 강조한다.사업영역을 넓히지 않는 대신 현재

갖고있는 사업을 철저히 하겠다는게 그의 경영방침이다.5개 계열사중

금강(유리.석고보드등 건

축자재).고려화학(페인트).금강종합건설.고려시리카(유리원료.광산)등

4개사가 건축자재나 공업자재 관련 회사다.

그의 이같은'전문화의식'은 유별난 데가 있다.신입사원도 화학과 출신을

많이 뽑을 뿐만 아니라 일단 입사한 직원은 출신학과나 학력에 관계없이

3년정도는'화학공부'를 계속 시킨다.

전문가 의식은 인사스타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인사의 기본원칙은'한

가지만 잘하면 다 잘할 수 있다'는 것.임직원 개개인의 장점을 찾아내

적재적소에 배치한다는 방침이다.체육과 출신을 영업에 배치해 전문성을

발휘하게 하는가 하면 고

졸출신 사장도 2명이 있다.鄭회장은“회사 조직에는 공부 잘하고 머리

좋은 사람은 10%만 있으면 되고 나머지 인력은 그들대로 또 할 일이

있다”는 생각이다.

鄭회장의 형들은 모두 명예회장으로 일선에서 한걸음 물러났으나 그는

회장으로 경영 일선을 지키고 있다.아직 61세로 젊은편이어서 앞으로 10년

정도는 더 경영 일선에서 뛰지 않겠느냐고 그룹 내부에선 관측한다.

學歷보다 능력위주 人事

그는 이에대해“세 아들(夢進.夢翼.夢烈)이 회사 구석구석에서 좀더

경영수업을 한 다음 단계적으로 올라가야 한다”면서“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승계가 빨라지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만 말한다.몽진(38)씨는 현재

고려화학 싱가포르 현지법인 사장,몽익(36)씨는 금강 전무,몽열(34)씨는

종합건설 상무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KCC그룹엔 그룹의 의사를 결정하는 공식적인 기구는 없다.월2회(대개

2,15일) 전체 중역회의를 열어 대소사를 논의하는게 전부다.鄭회장은

계열사 사장들에게 권한을 많이 위임하지만 신규투자나 정기인사등 주요

현안만큼은 자신과 협의

해 결정토록 하고 있다.

鄭회장을 보좌해 그룹을 움직이는'3인'은 금강 정종순(鄭鍾淳)사장과

고려화학 김충세(金忠世)사장,금강종합건설 서석구(徐錫九)사장.모두 사업

초기부터 鄭회장과 함께 일해온 이들이다.

정종순 사장은 남의 얘기를 잘 듣는 개방적 스타일의 경영자다.68년

현대자동차로 입사해 73년 금강 기획실 차장으로 옮겨 고려화학 임원이

됐고 이후 금강에서 줄곧 승진해 95년말 사장자리에 오른

관리.기획통이다.부산상고.서울대 경

영학과 출신이며 판단이 빠르고 특이한 사업 아이디어를 경영에 많이

반영하고 있다.

月2회꼴 全體 중역회의

김충세 사장도 기획.관리통이다.65년 금강으로 입사해 고려화학이 설립된

74년 이사가 된뒤 상무.전무.부사장을 거쳐 85년 고려화학 사장에 올라

13년째 경영을 맡고 있다.초창기의 울산공장은 물론 전주.아산공장과

싱가포르 공장 건

설등을 도맡아 치러냈다.부지런하고 치밀한 성격으로 최근 바닥재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서석구 사장은 고려화학.금강등을 거치며 주로 영업을 담당했다.62년

금강에 입사했으며 鄭회장과는 동국대 동기로 오랜

지기(知己)사이다.경북고 출신으로 정.관.재계에 아는 사람이

많다.'KCC에서 제일 먼저 출근하는 사람'으로 알려

질 정도로 부지런하다.

고려시리카의 안성진(安性珍)대표이사와 금강레저의

안창식(安昌植)대표이사는 고졸 사원 출신으로 입사후 대학을 졸업했다.

안성진대표는 66년 금강 건설사업부에 입사해 기능공 관리등 현장근무를

많이 했으며 96년 대표자리를 맡았다.호.불호가 분명한 성격이며 태권도

4단이기도 하다.안창식대표는 총무부와 비서실등을 거쳐 93년 대표가

됐다.성실하고 부지런

한 성격에 법없이도 살 사람이란 얘기를 듣는다.

KCC그룹의 목표는 세계 굴지의'화학제품 전문그룹'이다.21세기의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선 기술기반 확충과 경영자 양성,2세승계작업등을 잘 이뤄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성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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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동안 성원해주신 독자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취재를 담당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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