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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부외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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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 ‘가슴을 닫게.’ 릴리하이 박사가 말했다. 그는 나와 레플리 박사를 남겨둔 채 수술실을 떠났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살아서 웃었고 수술만 마치면 다른 아이들과 뛰어다니며 놀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던 아이는 수술대 위에서 죽음을 맞았다. 순전히 내 실수였다. 나는 머리 위 돔에서 망연자실해 있는 아이 아버지의 시선 아래서 가슴을 꿰매는 작업을 마쳤다. 위를 올려다 볼 수 없었다. 그랬다면 일을 계속할 수 없었을 것….” 1967년 12월 3일 세계 최초로 사람의 심장 이식에 성공한 남아공 의사 크리스티안 바너드(흉부외과) 박사의 저서 『원 라이프(One life)』의 한 대목이다.

여기 등장하는 미국의 월턴 릴리하이 박사는 개심술의 ‘원조’이며 바너드 박사는 한때 그의 수술 보조의로 일했다.

의학의 여러 분야 가운데서 흉부외과만 한 ‘드라마’는 없다. 생명을 살리면 의사로서의 희열·보람을 온 몸으로 느낀다. 결과가 나쁘면 엄청난 스트레스·좌절감에 시달린다. 환자와 함께 의사도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TV 의료 드라마 ‘뉴하트’ ‘외과의사 봉달희’ ‘하얀거탑’(일본판)의 주인공이 모두 흉부외과 의사 역을 맡은 것은 극과 극이 공존해서다.

흉부외과 의사는 심장·폐·식도를 주로 다룬다. 취급하는 질환은 협심증·심근경색·폐암·식도암 등이다. 수술실·중환자실 같이 병원에서 긴장도가 최고인 곳이 활동 공간이다. 고의로 환자의 심장을 멎게 한 뒤 다시 뛰게 하는 ‘아찔한’ 수술도 이뤄진다.

서구식 식사 때문인지 심장병 환자는 매년 는다. 폐암은 국내에서 사망률 1위의 암이 된 지 오래다. 이런 시기에 흉부외과가 흉가가 되고 있다. ‘고생은 죽도록 하는데 개업도 못하며 돈도 안 되는’ 일에 베팅할 의사가 거의 없는 탓이다. 최근 접수 마감된 내년도 레지던트 모집에서 흉부외과(76명 모집)엔 18명이 지원했다. 최하위다. 서울대병원 등 국내 4대 병원도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송명근이라는 스타 심장 전문의가 있는 건국대병원에도 지원이 전무했다. 흉부외과 의사는 ‘내가 아니면 누가 살리랴’ 는 노래 가사를 우스갯소리처럼 자주 읊조린다. 그러나 충원이 계속 안 돼 업무가 더 과중된다면 이런 자부심이나 여유조차 갖기 힘들 터. 한계에 다다르면 의료 후진국에서 온 의사에게 가슴을 맡겨야 할지 모른다. 흉부외과 부활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