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화단의 자존심 볼탕스키 21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서 대규모 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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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미국과 독일이 양분하고 있는 세계미술계에서 프랑스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있는 대표 작가로 손꼽히는 크리스티앙 볼탕스키(53).독일'카피탈'지가 선정한 96년 1백대 작가에 백남준보다 한 순위 앞선 7위에 올라 있는 그의 작품세계를

직접 만나볼 수 있는 대규모 전시가 오는 21일부터 4월6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제2전시실에서 열린다.

볼탕스키의 작품은'프랑스 작가전'과'카르티에 재단 소장품전'등 여러 기획전에서 간간이 소개된 적은 있지만 개인전 형식을 띤 본격적인 작품세계 조명은 이번이 처음.

'겨울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그의 초기작에서부터 유년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미키클럽 62명의 회원들'과'프랑수아 C의 의복'등 대표작을 정리해 보여준다.이 작품들은 모두 오래된 사진이나 녹슨 양철통.헌옷등

일상적 소재를 사용한 것들이다.

이와 함께 볼탕스키가 2차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의 사진을 사용해 작업했던 구작과 비슷한 형태의 신작도 발표된다.정신대에 끌려갔다 돌아온 한국 할머니들의 사진을 이용해 우리나라에서 직접 제작하는 작품이다.이미 여러차

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볼탕스키는 현장작업을 위해 전시를 1주일 앞둔 지난 13일 서울에 도착했다.

파리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볼탕스키는 하랄드 제만(제2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이 기획했던 지난 72년 카셀 도큐멘타에 가족의 사진을 모아 연대기적으로 설치한 작품을 출품한 후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73년에는 세계 각국 62명의 미술관계자들에게 편지를 발송해 미술관 주변의 한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오브제 전체를 미술관에 전시할 것을 제의한다.이 결과로 바덴바덴미술관등 6개 장소에서 '목록표'란 이름의 전시가 이루어지면서 세계

적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80년대 들어 장난감과 꼭두각시로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작품 경향을 보이기도 했으며 95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선 1백년동안 이 비엔날레에 참가한 작가들의 이름을 기록한 기념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익명의 인물사진이나 그가 쓰던 일상용품등을 주소재로 사용한 작품들을 보면 볼탕스키가 개인사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하지만 이는 특정인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이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자가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는 하나의 기호

(記號)역할을 하고 있다.“작품의 일부는 감상자에 의해 창조된다”는 볼탕스키의 말은 그의 작품세계를 대변한다. 〈안혜리 기자〉

<사진설명>

범죄를 다루는 프랑스 잡지'탐정'에 실린 범죄자와 희생자의 사진을

이용해 제작한 작품.245×120㎝.하지만 피.가해자를 구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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