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씨 망명듣고 테러 직감-귀순후 신변안전 몸부림 이한영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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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이 최고니까 초콜릿부터 팔고 인터뷰합시다.” 피격 이틀전인 13일 서울 G백화점 초콜릿 매장에서 본지 기자와 만난 이한영(李韓永.36)씨는 농담을 하는등 여유가 있어 보였다.

백화점 지하1층에서 1월10일부터 2월14일까지 초콜릿매장을 운영한 李씨는 밸런타인 데이 특수(特需)기대에 어울리게 인파가 모여들자 어린이처럼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순간순간 어두운 그림자가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것은 숨길 수 없었다.

피격사건후 백화점 직원 朴모(29)씨는“가끔 李씨가'언론에 너무 얼굴이 알려져 있는 처지에 이렇게 많은 사람앞에 나서도 되는건지 모르겠다''신변에 위협을 느낀다'고 말한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제야 알 것같다”고 말했다.

李씨는 82년 자유의 품에 안기고서도 14년동안 내내 테러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음이 통하는 친구.동료들을 만날때면 이처럼 불안감을 털어놓곤 했다.

그는 신분을 조금이라도 감추기 위해 수시로 전화.무선호출기 번호를 바꾸면서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데 안간힘을 써왔다.

지난해 9월부터 李씨와 친분을 쌓아온 尹모(37.회사원)씨는“李씨가 처음 알려준 집 전화번호가 한달뒤에는 달랐고 다시 한달뒤에는 이마저 통화되지 않았다.무선호출기도 두번이나 번호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李씨는 또 여러개의 안경을 번갈아 사용하는가 하면 북한 억양을 없애기 위해 경상도.전라도 사투리를 배우기까지 했다.

귀순 직후 이름을 이일남에서'한국과 더불어 영원하라'는 의미의'이한영'으로 바꾸고 85년 여름 성형수술로 얼굴을 개조한 것도 일종의 신분노출을 막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황장엽(黃長燁)북한 노동당비서의 망명후에는'증세'가 악화돼 말수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등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다.특히 이때부터는 자신이 묵고 있던 집 주인 김장현(金章顯.44)씨에게 수시로“언제 간첩에게 당할지 모르겠다”며 불안해했다.

반면 李씨는 관계기관의 보호에도 극도의 불신감을 내보여 마찰을 빚기도 했다.지난해말 안기부 간부가“언제 누구한테 테러당할지 모른다.안가에 들어와 살아라”고 충고하자“안기부가 나를 감시하려고 한다.죽어도 안가에서는 살지 않는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대신 李씨는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며“성질 급한 김정일(金正日)이 남한의 고정간첩을 시켜 암살할지도 모르니 어머니가 있는 미국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하다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김상우 기자〉

<사진설명>

성형수술 전과 후의 이한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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