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테러비상>이한영씨 피격까지 긴박했던 순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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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한영(李韓永)씨는 피격 며칠전부터 신변위협을 느껴온 것으로 밝혀졌다.현장과 수사 상황.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피격과정을 재구성해본다. [편집자註]

사건 발생 열흘전인 지난 5일 오후 李씨가 임시거처로 사용중인

경기도성남시분당구 현대아파트 418동 1402호 김장현(金章顯.44)씨 집에

40대 남자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국인데 전화를 받는 곳이 어느 아파트 몇 동 몇 호냐.” 집을

지키던 金씨의 부인 南상화(43)씨는“전화국이라면 더 잘 알 것

아니냐”며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이상하게 여긴 南씨는 이

사실을 함께 사는 李씨에게 털어놓았다.순간 李씨는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며“간첩이 나를 노리고 있다”면서 어쩔줄 몰라했다.

해당 전화국에 알아보았지만“전화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범인들이

李씨를 오랫동안 치밀하게 추적해왔음을 뒷받침해주는 대목이다.

사건 당일인 15일 오전 여성잡지사 기자라고 밝힌 40대 남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황장엽(黃長燁)비서 망명사건 때문에 李씨와 인터뷰를

하려고 한다”며 귀가시간을 물었다.

南씨는 李씨가 기자와 자주 만나는 모습을 봐왔기에 아무 의심없이

李씨의 핸드폰과 무선호출기 번호를 알려줬다.하지만 이날 오후3~6시

사이에도 몇 차례 기자를 사칭한 전화가 계속됐다.사건발생 2시간여전인

오후8시쯤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그는 핸드폰과 무선호출기 번호를

다짐하듯 다시 확인한 뒤 李씨의 귀가시간을 묻고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이 잡지사측은 李씨 피습후“李씨에게 전화한 사실이 없다”고 확인했다.

1시간 뒤 南씨는 李씨로부터 전화를 받고 그 통화내용을 그대로

전했다.그러자 李씨는“그 잡지사에는 아는 기자가 없고 약속한 것도

없으니 다시 전화가 오면 오늘 안들어온다고 말하라”고 南씨에게

다급하게 부탁했다.

南씨와 통화를 마친 李씨는 황급히 귀가,오후9시49분쯤 집에

도착했다.그러나 미리 아파트에 잠입해 李씨를 기다리고 있었던듯 범인

2명이 14층 엘리베이트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싸울 틈도 없이 李씨는 한 사람의 주먹을 맞고 고꾸라졌고 또다른 한명은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을 발사했지만 엘리베이트 오른쪽 하단에 빗맞고

퉁겨나갔다.그러자 괴한은 쓰러진 李씨의 어깨를 붙잡고 왼쪽 눈썹 위에

총구를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그리고는 탄피와 피를 닦은 화장지를

버린채 비상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쏜살같이 달아났다.

당시 집안에서 李씨를 기다리던 南씨는 말다툼과 비명소리가 들리자

비디오폰을 통해 밖을 내다봤다.화면을 통해 한쪽 구석에 쓰러져 있는

李씨를 보는 순간 南씨는 다리가 후들거려 아무소리도 못하고 얼어붙은듯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같은 시각 南씨와 복도를 사이에 둔 1401호 박종은(朴鍾恩.46)씨가 119에

연락해 李씨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김기찬.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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