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미국의 턱밑 카리브해서 대규모 군사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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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러시아가 남미의 대표적인 반미 국가 베네수엘라와 1~3일 미국의 턱밑인 카리브해 해역에서 대규모 합동 해상훈련을 실시했다. 소련 붕괴 후 처음이다. 미국이 옛 소련권으로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확장과 동유럽 미사일 방어(MD) 기지 건설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는 데 대한 러시아의 강력한 대응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내년에 출범하는 버락 오바마 미 정권에 대해 사전 경고하는 뜻도 담겨 있다.

러시아는 양국 이름을 따 ‘벤루스 2008’로 명명된 이번 훈련에 북해 함대 소속 핵추진 순양함 ‘피터대제’호(2만3000t급)와 구축함 ‘차바넨코 제독’호(7700t급) 등 4척의 군함과 1600명의 병력을 파견했다. 9월 말 러시아 북부 바렌츠해를 출발한 피터대제호 등은 2만8000㎞의 바닷길을 두 달 동안 항해해 지난달 말 베네수엘라에 도착했다. 베네수엘라 측에선 11척의 군함과 600명의 병력이 참가했다.

러시아 북해함대 사령관 이바노비치 콜로로프는 “이번 훈련은 양국 해군의 테러와 국제 마약 거래 등에 대한 대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훈련이 제3국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옛 소련 국가인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를 나토에 가입시키고, 폴란드와 체코에 MD 기지를 건설하려는 미국에 대해 러시아가 역공을 취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지난 8월 러·그루지야 전쟁 당시 미국이 자국 군함을 흑해로 파견한 데 대한 보복 성격도 짙다는 설명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5~28일 브라질·베네수엘라·쿠바 등 남미 국가를 잇따라 방문한 것도 대미 견제 전략으로 해석되고 있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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