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친 - 반정부 진영 총리 선출 절차 대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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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태국 헌법재판소의 집권 여당에 대한 선거법 위반 결정으로 2일 솜차이 웡사왓 총리 내각이 사퇴했지만 정국은 여전히 혼미하다. 태국 의회가 다음 주 초 이틀간 임시회의를 열고 차기 총리를 선출하기로 했지만 차기 총리가 누가 되는가를 놓고 친·반정부 세력 간 의견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3일엔 총리 대행인 와랏 찬비라쿨 부총리의 헌법적 권한을 놓고 친정부와 반정부 단체가 대립했다. 수완나품 국제공항 점거를 주도했던 국민민주주의연대(PAD) 관계자는 “총리 대행은 국민의 대표에 의해 선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차기 총리를 선출하는 의회를 소집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의회에서 차기 총리를 선출할 경우 해체된 집권여당 ‘국민의 힘 당(PPP)’ 후보가 총리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전에 막겠다는 계산이다.

헌재 결정으로 해체된 PPP 의석은 당간부 의원들이 의석을 박탈당해 의석이 14개 줄었지만 여전히 219석을 가진 원내 최대 파벌이다. 여기에다 연정 5개 당까지 합치면 6개 당 의석(283석)은 재적 의석의 절반을 넘는다. PPP 출신 의원이 차기 총리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누가 총리가 되든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허수아비 정권이라는 비판을 받고, 또 다른 반정부 시위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래서 반정부단체인 PAD는 “의회를 해산한 후 재적의원의 70%는 임명으로, 나머지 30%는 직선으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왕이 만든 위원회가 의원들을 임명하게 해 사실상 국회를 ‘왕정 대리기관’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PAD 핵심 지도자인 손티 림통쿨은 2일 “꼭두각시 정부가 들어서고, 부패한 정치인들의 사면을 위해 헌법이나 법률을 개정한다면 다시 반정부 시위를 시작하겠다”고 위협했다.

친정부 단체인 UDD도 총리 선출을 앞두고 8일 의사당 앞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혀 다음 주 친·반정부 세력 간 가두 충돌이 본격화될 가능성도 크다.

◆무능력 정부에 불만 폭발=방콕 택시회사 ‘택시 미터’의 운전기사인 파리스타 차마마스는 고향이 북서부 도시 치앙마이다. 이곳은 탁신 전 총리의 정치적 거점이어서 지금까지 탁신과 후계자인 현 정부를 지지했다. 그러나 공항 점거사태 이후 반정부로 변했다. 그는 “공항이 일주일 넘게 점거됐는데도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는 통치할 자격이 없다. 차라리 쿠데타하는 군부가 낫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총선에선 방콕 시민의 절반 이상이 여당 PPP를 지지했다. 그러나 최근엔 공항 불법점거를 한 PAD보다 사태를 조기에 강력하게 수습하지 못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일간 방콕 포스트의 분송 코시초테탄나 부 에디터는 “PAD의 잘잘못을 논하기 전에 국가 위기관리를 못한 정부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높아져 차기 총선에서 최소 10% 감표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강경투쟁 방식을 고집한 PAD가 역풍을 맞을 것이란 관측도 만만치 않다. AFP통신은 그동안 야당인 PAD를 지지했던 일부 부유층과 온건파·재계 유력인사들이 PAD의 공항 점거가 끼친 악영향에 놀라 PAD 지지를 철회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방콕 출라롱콘대 마이클 넬슨 초빙교수는 “이번 태국 공항 폐쇄 사태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며 “갈등은 잠시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것일 뿐”이라고 진단했다.

방콕=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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