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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간에 작동중인 정부간 채널만 68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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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서는 한미동맹 편승(bandwagoning)에 중점을 두되 네트워크의 다양화를 통해 상황에 따라 균형(balancing)과 위험분산(hedging)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지난달 29일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현대중국연구소(소장 김태호)와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제4회 한·미·중 미래포럼’에 발표자로 나선 이상현 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장의 주장이다. 서울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한림1관 한림홀에서 ‘중국의 부상과 동아시아의 세력전이: 전략적·지역적 함의’를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에서는 학자와 일반인 등 100여 명이 참석해 한·미·중 관계의 미래와 중국의 부상에 대한 심도 깊은 발표와 토론을 전개했다. 다음은 이날 발표된 논문과 토론의 요지다.

◇변화하는 한·미 관계와 중국 변수(이상현, 세종연구소)=지난 4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한·미 동맹을 ‘21세기 한·미 전략동맹’으로 격상시켰다. 이번 격상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동맹 ▶군사·정치외교·경제·사회·문화 등 포괄적 분야에서 양국이 공유하는 이익을 더욱 확대하는 신뢰동맹 ▶테러·환경오염 등 범세계적 차원의 전략적 이익을 공유해 국제평화구축에 기여하는 평화구축동맹을 그 내용으로 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급부상은 한국의 동맹정책과 선린정책의 균형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앞으로 오바마 시대의 미·중 관계는 큰 틀에서 갈등과 협조가 공존하는 가운데 급격한 변화는 지양하는 안정된 관계를 이어나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의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의 기조는 한·미 동맹을 중심으로 복합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여기서 네트워크는 적 개념을 상정하는 동맹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미 동맹과 중국의 부상 사이에서 평화로운 공존의 방정식을 발견해야 한다. 또한 한국은 북한 급변사태 시 한반도 주변에서 발생할 엄청난 혼란을 막기 위한 관련국들과의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한ㆍ중 관계 현황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소)=지난 5월 이명박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양국 정상은 기존의 ‘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키는데 합의했다. 이는 중국 측이 한국과의 관계격상을 통해 미국의 대(對)한반도 영향력 확대를 상쇄시키고자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중 관계의 변화 속에서 ‘한·미 동맹관계’와 ‘한·중 전략적관계’의 이중구조를 유지해야 하는 한국은 끊임없이 양자택일의 정책선택을 요구받는 사례가 증가할 것이다. 중국의 대(對)한반도 이익은 ‘한반도의 통일’이 아니라 ‘한반도의 안정’이다. 북한 급변사태 발생과 중국의 군사개입 가능성에 대해서도 한국과 중국은 논의할 수 있는 토대가 아직 구축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양국의 상호인식과 민족주의 문제도 양국 간 폭발력이 강한 이슈다.
한·중 양국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실질적으로 강화하기 위해서는 ▶상호인식의 전환 ▶21세기 전략적 협력관계의 기본목표 구체화 ▶양국 간 교류채널의 다원화 ▶'호혜평등' 관계의 강화 ▶다자안보협력의 구축 등과 같은 협력방향의 추구가 필요하다.


박인휘 교수

◇미ㆍ중 관계와 동아시아 안보(박인휘, 이화여대)=현재 국제정치는 불안정한 단-다극 체제로 볼 수 있다. 미국의 군사력을 정점으로 한 단극적 우위와 하위 정치 영역에서의 유럽, 중국, 일본 등 이들 국가들 간의 불안정한 다극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중국의 부상으로 동아시아에서 지역안보 복합성이 두드러지고 있다. 미국의 글로벌 지위의 변화 속에서 우리 역시 ‘글로벌 안보’와 ‘지역 안보’ 사이의 연계성에 치밀한 분석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한 국가가 정보, 문화, 교육프로그램과 관련, 전략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해 목표국의 여론 환경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정치 지도자가 자국의 외교정책 목적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공공 외교’의 중요성이 미국에서 강조되고 있다. 현재 동아시아에서는 탈근대적 리더십 창출과 전통적 리더십 사이에서 균형 찾기가 병행되고 있다.


정상은 교수

◇제조업 무역구조 분석을 통한 한·중 분업구조 연구(정상은, 한남대)=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빠른 성장세를 지속하던 한국의 대중국 수출이 2006년을 기점으로 수출증가세가 둔화면서 무역수지 흑자가 감소하고 대(對)중국 수출입 품목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제조업 222개 산업분야를 세계 및 중국 대비 무역수지 적자와 흑자를 기준으로 해 한·중 산업구조를 4가지로 유형화해 각 유형 간의 변화를 추적하였다. 즉 대(對)중국 및 대(對)세계 무역수지에서 흑자를 보이고 있는 ‘유형Ⅰ’, 대(對)세계 무역수지가 적자이지만 중국과 무역에서 흑자를 보는 ‘유형Ⅱ’, 대(對)세계 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해서도 무역수지가 적자를 보이는 ‘유형Ⅲ’, 대(對)중국 무역수지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대(對)세계 무역수지는 흑자를 기록하는 ‘유형Ⅳ’의 산업구조 변화 추이를 통해 한국 제조업의 입지가 축소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따라서 향후 한·중간에는 기술격차, 경쟁력 수준에 따른 복잡한 분업체제가 구축될 것이며 한국은 고부가가치화를 통해 수평적 분업체제 구축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조영남 교수

◇“이미 미·중 사이에는 비공식 공동관리 체제가 형성됐다”=조영남 서울대 교수는 지난 11월 초 베이징포럼에 참석한 로웰 디트머의 말을 빌어 미국과 중국 사이에는 정부 차원에서 68개의 채널이 작동되고 있을 정도로 밀접한 파트너십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동아시아는 중층적 다면적 집합체로 파악해야 한다”며 “미국과 중국 외에도 역내 국가들의 강화되고 있는 역할도 고려해야 동아시아의 미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논평했다. 특히 올 한해 금융위기 전개는 1929년 대공황과 달리 국제질서에서 거대한 파워 쉬프트가 진행되고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즉, 국제 금융위기를 계기로 신브래튼우드 체제 형성과정에서 중국과 EU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 결국 기존 미국의 아시아 정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될 것이다. 중국은 지난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기간 동안 위안화 환율을 방어해 ‘책임지는 대국’으로서 입지를 강화한 이후 공세적으로 아세안과 FTA를 체결했다. 올해 세계 금융위기 대처방안을 놓고서는 현재 중국 내부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돈도 내고 발언권도 확보하자는 적극론자들과, 돈은 내야 하지만 아직 ‘룰 메이커’가 되기엔 시기상조라는 소극론자들이 대치하고 있다. 향후 중국의 변화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리=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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