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볜동포들 설 어떻게 쇠나-조선족 작가 류원무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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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중국에서 제일 큰 명절이 설이다.한국에서 공력(양력)으로 쇠는 설을 신정,농력(음력)으로 쇠는 설을 설날로 구분하는데 반해 중국 한족들은 신정을 원단(元旦),설날을 춘절(春節)이라 부르고 있고,조선족들은 나름대로 양력 설,음력 설 로 부르는데보통 설 하면 음력설로 통하고 있다. 중국에서 설의 법정 휴가일은 사흘이다.그렇지만 앞뒤 일요일을미루고 당겨 닷새,그믐날을 공떼어먹고 엿새,대개는 한주일을 즐기는데 온집안이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이다.설이면 이웃 한족들은출입문에 복(福)자를 붙이고 붉은 주련(柱聯) 을 붙이고 하지만 조선족은 그런 것에 왼눈도 팔지 않고 집안팎을 청결히 해 밝음으로 새해를 맞는다.그믐날 한족들은 날샘하다 새날이 닥치면잡귀를 쫓는다고 밤새 폭죽이나 딱총을 요란스레 쏴대지만 조선족은 아이들이 재미로 사 터뜨리며 노는 정도다.설날 아침이면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새배를 드린다.한집안에서 아이들에게 세전이듬뿍 차려진다.아침이 지나면 동네 어른들에게 인사다니는데 여인들만은 초하룻날 나다니지 않는다.초이튿날에는 처가에 인사 가 하루를 즐긴다.사흗 날부터 동네돌이 설잔치가 벌어져 이집 저집에서 술상이 차려지고 윷치고 화투치며 명절을 즐긴다. 그러나 아파트단지에 갇혀 사는 도시에서는 가정오락에만 그치고만다.아이때 세전타려고 코가 얼어도 온동네를 돌며 어른들께 세배올리던 옛일은 아쉬운 그리움으로 기억속에 남아있을 따름이다. 설날 아침에 지내던 차례제는 없어졌다.문화혁명때 봉건 미신이라고 배척됐던 까닭이다.그리고 또 우리 조선족에는 고향을 등지고 이역땅에 와 선산에도 다녀오지 못하는 신세에 차례를 지내서는 뭘 하느냐는 망향의 설움과 체념이 조상을 위하 는 기틀마저흐트려놓았다.그래서 설날이면 또 등지고 온 고향이야기를 나누며사향(思鄕)에 젖기도 한다. 그렇게 망향노래만 부르다 올해는 고국에서 설을 쇤다.2월2일오후 서울구로구 구민회관에서 맞은 .제1회 중국동포 근로자 설날 대잔치'.2천좌석의 회관이 차고 또 넘쳤다.다같이 소리모아부르는 흘러간 노래,그것은 고양된 정의 나눔이 었다.고국의 일자리에서 당한 사기와 괄시도 순간 무너져 내렸다.별미로 알려진약식,감미롭게 목줄을 타는 인절미,달콤시원한 식혜,우리 입맛도하나! 사물놀이에 어깨춤이 나고 부채춤에 넋이 빠지고 상무에 신들리는 우리의 정감도 하나!정 녕 한핏줄을 타고난 형제의 정은 무르녹았다.모국이 외국으로 됐건만 설날 만큼은 모국을 내 고향으로 온전히 돌려준다. ※필자는 중국조선족 1급작가로 남한 사람과 중국 조선족의 동질성및 이질성 취재차 1월초 입국,2개월간 머무를 예정.<사진설명> 이역만리에서 망향가만 부르다 초로에 접어들어서야 고국에서 설다운 설을 쇤다는 류원무씨.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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