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게이트>이형구 前산업은행총재 귀가 조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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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보의혹사건과 관련,4일 오전 10시 검찰에 소환된 이형구(李炯九.사진)전 산업은행총재가 26시간만인 5일낮 소환자 가운데 처음으로 무사히(?)귀가했다. “대검 중수부에 소환당한 비리혐의 인사가 구속되지 않고 돌아간 경우는 중수부가 생긴 이래 드문 일”이라는 것이 검찰관계자의 설명이다. 검찰의 공식설명은“뚜렷한 혐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최병국(崔炳國)중수부장은“애당초 대출관련 의혹을 조사하려 했던 것뿐이지 정태수(鄭泰守)총회장이 李씨에게 돈을 건넸다고 진술해 부른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그러나 그는 李 씨를 소환하기 전엔“검찰이라고 아무런(범죄혐의)단서없이 은행장들을 마구 불러올수 있겠느냐”고 말했었다. 李씨는 한보철강에 공짜대출이나 다름없는 거액의 산업은행 시설자금을 지원,수사초기부터 사법처리 0순위로 지목받아왔다.그는 검찰에서 나오자 언론과의 접촉을 피해 어디론가 몸을 숨겼다.그의 귀가에는.다른 이유'가 있다는 관측이 그래서 유력하다.검찰주변에서는 95년 6월 노동부장관 재직시 산은총재 시절의 대출비리로 감옥생활을 경험한 李씨가 이번에 다시 소환당하자 대출관련 외압에 대해 필요 이상(?)을 밝히는 바람에 검찰이 뒷감당이 어려워 우선 귀가시킬 수밖에 없었 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있다. 李씨는 검찰에서“한보철강 대출은 산업은행이 주도한 것이아니라 정부차원의 지원이었다”고 진술,정계실력자나 관계부처로부터 외압이 있었음을 사실상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李씨가 건설.재무.기획원의 차관으로 고속승진을 거듭했고 94년말 노동부장관으로 입각할 당시.민주계 실세의 후원'을업었다는 설이 파다했다. 검찰주변에서는 이와 함께 李씨로부터 외압을 행사한 인사들에 대해 만족할만한 단서를 얻어내 검찰이 무혐의처리해줬다는 정반대논리와 李씨가 95년 6월 구속된후 지난해 8월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난데다 수뢰액도.떡값'정도에 불과, 사법처리를 면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어쨌든 李 전총재는 한보철강 당진공장에 대한 초기 금융지원을주도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그는 90년9월 산업은행 총재로 부임한 이후 94년12월 노동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길때까지 4년3개월간 재임했으며 92년말부터 한보에 대출거래 를 터 모두 2천7백25억원을 지원했다.특히 鄭총회장이 93년 경영일선에 복귀한후 산은주도로 시설재 수입을 위한 외화자금 12억달러를 4개 은행이 분담키로 하면서 은행들의 한보지원이 본격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본인은“당시 상공부의 외화대출 추천승인이 있었던데다 사업성도있는 것으로 평가돼 지원을 결정했다”고 설명했지만 다른 3개 은행은“산업은행이 앞장섰기 때문에 따라갔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62년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생활을 출발한 그는 29년간 근무하다가 82년 재무부 이재국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 이후 건설.재무.기획원 차관등 요직을 두루 거친후 산업은행 총재가 됨으로써 그다지 인연이 깊지 않았던 금융계에도 발을 담 그게 됐다. 총재 재임중에도 입각(入閣)에 관심이 많았고 실제로 개각때마다 하마평에 오르곤 했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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