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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61. 아프리카올림픽재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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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아프리카올림픽재단 이사장이 돼 세네 갈의 디오프 대통령(右)을 만났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나는 올림픽을 관장하는 IOC의 위원장이지만 스포츠 이외에 정치를 하는 게 60% 정도”라며 “세계의 화살을 막아내려니 무척 피곤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도자가 감수해야 할 고난이다. 나도 IOC와 KOC·태권도를 동시에 책임져야 하니 비슷한 처지였다.

운동을 하고 싶어도, 놀고 싶어도 장소와 시설이 없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한 재단이 만들어졌다. 아프리카올림픽재단이다.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시작된 이 재단은 아프리카 20군데에 축구장과 놀이방을 만드는 게 주목적이었다.

1994년 스위스 로잔의 IOC 본부에서 열린 회의에서 내가 재단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세네갈 음바예 IOC 위원의 아들인 이브라임 음바예가 사무국장이고, 코트디부아르의 귀란두 위원이 사무총장인데 아프리카 IOC 위원들이 나에게 이사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95년 세네갈에서 재단 회의가 열렸다. 아프리카의 스포츠 지도자, IOC 위원, 각국 NOC 위원장이 모였다. 나는 윤강로 KOC 국제차장과 IOC 사무국의 수잔을 대동하고 참석해 총회를 주재했다. 디오프 세네갈 대통령을 예방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키가 무척 컸다.

재단에서 시범적으로 만든 축구장을 찾았다. 붉은 흙 바닥을 평평하게 다진 축구장이었고, 1층짜리 목조 가건물이 있었다. 애들이 그림 그리고 노는 놀이방이었다. 들어가 보니 캄캄했다. 어린이들이 줄을 서서 나에게 화환을 걸어줬다. “1년 유지비가 얼마나 드냐”고 물어보니 “3000달러 정도”라고 했다. 3000달러면 1년을 유지할 수 있다니. 너무 비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비 명목으로 가져온 돈에서 3000달러를 꺼내서 주고 왔다.

재단 재정을 IOC가 지원하지도 않고 특정 기업이 후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기금을 모아야 했다. 여기저기서 23만 달러를 모아서 IOC가 관리하는 아프리카올림픽재단 계좌에 보냈다. 재단 기반이 어느 정도 다져지자 IOC가 50만 달러씩 원조키로 했고, 코카콜라 등 기업도 지원하기 시작했다. 사마란치에 이어 2001년 IOC 위원장이 된 자크 로게가 재단 이사장이 되고, 나와 사마란치는 명예이사장이 됐다.

아프리카는 특히 축구와 장거리 육상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너무나 가난해서 세계와 발맞추기가 힘들다. 올림픽 운동은 이런 가난한 곳을 지원해서 함께 스포츠를 통해 인류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가난하다 보니 웃지 못할 해프닝도 일어난다. 한 번은 음바예 위원이 편지를 보내왔다. ‘ 큰아들이 세네갈에 은행을 설립하려는데 삼성에 부탁해서 400만 달러의 차관을 얻어달라’라는 내용이었다. 삼성에 얘기해 봐야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사마란치에게 슬쩍 말하니 “세네갈에 무슨 은행?” 하면서 화를 냈다. 없었던 일로 하고 편지는 태워버렸다. 음바예는 IOC 윤리위원장이 됐다.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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