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60. 이건희 IOC 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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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996년 애틀랜타 총회에서 나란히 IOC 위원이 된 이건희 회장中, 북한 장웅(右)씨와 함께 포즈를 취한 필자.

올림픽 개최국으로서 IOC 위원을 추가하는 문제가 대두됐다. 지금은 개인 IOC 위원을 한 나라에서 한 명(현재 220개 회원국에서 75명)밖에 둘 수 없지만 1990년대까지는 올림픽을 개최한 국가는 위원을 추가할 수 있었다. 한국의 IOC 위원은 나 혼자였기에 1명을 더 추천할 수 있어 자천타천으로 많은 사람이 후보로 나섰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학창 시절 레슬링 선수를 했고, 대한레슬링협회 회장도 지냈다. 내가 KOC 위원장이 된 뒤에 KOC 부위원장도 했다. 삼성그룹은 육상·빙상·승마·레슬링 등 많은 경기단체를 맡고 있었다.

94년 4월께 김영삼 대통령이 전화를 했다. 여러 사람이 IOC 위원이 되려고 운동을 한다는데 설명을 좀 해달라는 것이었다. 김 대통령은 내 얘기를 다 듣더니 “이건희 회장이 가장 낫겠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다. 이 회장이 중국에서 “한국에 일류는 없고 이류·삼류만 있다”는 발언을 해서 국가 이미지를 손상시켰으므로 IOC 위원 건은 없던 것으로 하라는 취지였다.

사마란치 위원장이 서울에 올 때 이 회장과 만나게 할 계획이었는데 그것도 어떻게 알았는지 “만나게 하지 말라”고 했다. 일본에 있던 이 회장에게 ‘들어오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오해는 금방 풀렸다. ‘그래도 이 회장이 제일 낫다’는 전갈이 왔다.

그해 9월께 사마란치가 다시 한국에 왔을 때 이 회장과 함께 만났다. 사마란치는 만찬 자리에서 이 회장에게 “스포츠는 뭐라고 생각하느냐” “올림픽 운동이란 뭐냐”는 등의 질문을 했다. 가만 보니 면접 테스트를 하는 것 같았다. 사마란치는 매우 만족해서 돌아갔다. 사마란치는 IOC 위원을 추천할 때 왕족·귀족·기업가·선수출신·스포츠행정가 등 광범위하게 포함시키고 있었다.

95년 부다페스트 IOC 총회에서 기대를 하고 있었으나 이때는 IOC 위원을 한 명도 뽑지 않았다. 다음해 애틀랜타 올림픽 직전에 사마란치가 방한했을 때 김 대통령이 추가 IOC 위원 건을 부탁했다. 사마란치는 “귀국해서 검토한 뒤 김운용 위원을 통해 알리겠다”고 했다. 얼마 후 연락이 왔는데 ‘이번에도 안 되겠고 연기해야겠다’는 내용이었다. 청와대에서는 “이야기가 다르지 않느냐”며 매우 불쾌해 했다.

애틀랜타에서 사마란치를 만났다. 그는 “당신 입장이 정 어려우면 이 회장의 IOC 위원 건을 추진하겠다. 대신 4년째 대기하고 있는 북한 장웅의 IOC 위원 건도 반대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애틀랜타 총회에서 이건희 회장과 장웅씨가 나란히 IOC 위원에 선출됐다.

이 회장이 IOC 위원이 된 뒤 삼성은 올림픽 파트너(공식 스폰서)가 돼 올림픽 발전에 큰 공헌을 하고 있고, 외환위기 때 다른 대기업이 경기단체에서 손을 뗄 때도 육상·태권도·배드민턴·탁구·레슬링·승마 등 엘리트 체육을 지탱해줬다.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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