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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망신살 예고하는 세계시인대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올해 한국 시인들은 세계 시인들 앞에서 시단(詩壇) 분열의 추한 모습으로, 혹은 수준이 떨어지는 시들로 망신을 살 것같다. 예정대로라면 오는 8월20일부터 24일까지 서울에서 제17회 세계시인대회가 열리게 된다. 이 대회에서는 외국 시인 2백여명, 국내 시인 4백여명이 참가해 시를 통한 세계 평화와 우의를 다지게 된다. 그러나 국내 주요 시인단체및 시인들이 불참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 대회의 서울 유치자가 시단의 대표성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

○…6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시작된 세계시인대회는 3년마다 한차례 이상 나라를 바꾸어가며 열린다. 서울에서는 79년 열렸고 지난해엔 일본 마에바시에서 열려 우리 시인 60여명이 참석했다. 이번 이 대회의 서울 유치는 시인 백한이씨등이 95년 8월 국제본부에 신청, 96년 1월 대회유치를 받아낸 것.

○…서울 세계시인대회 조직위원장으로서 백씨가 막상 조직을 구성하려고 주요 원로시인들에게 명예회장·고문등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으나 모두 거절당하고 또 시인단체들도 참석을 거부해버렸다. 무명에 가까운 시인이 시단의 합의도 거치지 않고 대회를 유치했다는 것이 이들의 불참 이유. 그러자 백씨는 나름대로 조직위를 구성, 자비를 털어서라도 대회를 예정대로 치르겠다고 지난달 31일 기자간담회에서 밝혔다.

○…시단의 합의도 없이 왜 대회를 유치했느냐는 질문에 백씨는 “문협 시분과·작가회의 시분과·한국시협·한국현대시협·자유시협·시조협등 뿔뿔이 나뉜 시단체중 어느 하나를 업고 시작하기보다 두루 통합해 대회를 치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러나 각 단체 모두 ‘주제도 모르는 사람이 나선다’며 외면해버리고 있는 실정. 이런 상황에 대해 세계시인대회 이사이자 79년 서울대회를 성공적으로 주관했던 원로시인 조병화씨는 “몹시 곤혹스럽다”며 “지금이라도 시단체 대표들이 만나 국제적 망신살이 뻗치지 않게 처음부터 다시 풀어나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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