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이야기 마을] 태국에서의 개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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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다. 첫 해외 나들이에 부푼 마음을 추스르며 태국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아름다운 바닷가, 풍부한 해산물과 과일, 각종 볼거리와 예쁜 여자 후배들은 내게 최고의 여름을 선사해 주고 있었다.

여행 3일째, 뜻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했다. 여자 3명이 자고 있던 방에 도둑이 들어 후배 한 명이 여권이 든 가방을 도둑맞았다. 문제는 그날 밤 내가 꾸었던 꿈이었다. 꿈 속에서 그 후배가 유난히 서럽게 울었다. 이유는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일행들 앞에서 꿈 얘기를 하며 후배에게 "그래서 네가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고 말했다. 다들 신기해 했다.

그런데 관광버스에 올라타자 가이드가 "여권을 잃어버린 분은 재발급되는 며칠 간 더 머물러야겠다"고 말했다. 순간 기억나지 않던 꿈의 앞 부분이 떠오르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오한이 계속됐고 심장은 요동쳤다.

저녁에 다시 술자리가 벌어졌고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꿈 얘기를 계속했다.

"아까 내 꿈 얘기 말이야. 사실은 그 앞 부분에…."

일순 모든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사실은 우리 모두 비행기를 타고 얘만 혼자 남겨지는데 그 비행기가 추락해 전부 죽고 얘만 혼자 살아서 울고 있던 거였어."

방안은 적막이 감돌았고 심지어 울음을 터뜨리는 여자 후배도 있었다. 모두 반신반의했지만 영 찜찜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술자리가 끝나고 다들 애써 침착함을 보이며 자기 숙소로 돌아갔다. 태국에서 마지막 밤은 그렇게 끝났다.

출국일인 다음날 모두 밝은 표정으로 관광했지만 출국 시간이 되자 한결같이 어두운 얼굴이 됐다. 공항에서 찍은 사진에는 모두 수심이 가득했다. 홀로 남은 후배는 슬픈 표정으로 우리를 배웅했고 우리는 출국심사 후 비행기에 올랐다. 유난히 비행기도 낡아 보였다. 비행 도중 우리는 초조함을 달래려 열심히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우리는 무사히 인천공항에 내렸다. 나는 친구들에게 죽도록 맞을 뻔했다. 황당했던 수학여행은 며칠 뒤 그 후배가 무사히 귀국함으로써 끝났고 악몽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다.

임종필(학생.27.인천시 효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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