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책임 국민에 떠넘기는 꼴^한보 국민기업化 가능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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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보철강을 제3자에게 팔지 않고.국민기업화'하는 방안이 제기되면서 구체적인 처리방법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국민기업화 방안은 크게 두가지.하나는 공기업인 포항제철에 인수.합병시키는 것.이 경우 한보철강을 산업합리화 업체로 지정해 금융.세제지원을 해주는 방안까지 고려해볼 수 있다.위탁경영을 맡은 포철이 인수만 하면 되기 때문에 절차도 간단하다. 다른 하나는 먼저 한보철강에 대한 은행의 대출금을 출자금으로전환,은행이 대주주가 되도록 한뒤 증자를 하면서 일반인에게 주식을 공모(公募),포철이나 한국전력과 같은 국민기업으로 만드는방안이다.한보철강은 2000년대 국내 철강수요 의 13%를 공급할 국가 기간산업체이기 때문에 명분도 있다는게 정부의 생각이다. 비슷한 선례(先例)도 있다.지난 80년 한국중공업이 부실화됐을때 정부가 산업.외환은행의 대출금을 출자금으로 전환시킨뒤증자과정에 한국전력이 참여토록 해 공기업으로 만들었던 것.이번에는 증자에 한국전력등 다른 공기업이 참여토록 하는 게 아니라일반인에.국민주'방식으로 공모하면 된다는게 정부 생각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두가지 다 아이디어 단계여서 변수가 많다.게다가 온갖 의혹을 사고 있는 대표적인 부실기업을 국민기업으로 만드는게 과연 바람직하느냐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이같은 정부 방안은 88년 국민주 방식에 의해 추진된 포철과 한국전력의 국민기업화와는 성격 자체가 크게 다르다는것이다. 당시 국민기업화 방안은.국가기간산업체의 경영성과를 국민에게 환원시키고 저소득층의 재산형성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추진됐었다.이때문에 대상도 우량기업인 포철과 한국전력으로 국한됐다. 그러나 한보철강은 빚더미 위에 올라앉아 있는데다 장래조차불투명한 부실기업이다.이런 기업을 포철에 인수시키거나 일반인 공모를 통해 국민기업화한다는 것은 민간기업의 부실경영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꼴이라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게다가 한보철강의 경영정상화가 늦어질 경우 정부와 은행이 막대한 운전자금과 금융비용을 계속 떠안아야 해 국민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우려도 있다.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온 공기업 민영화정책과도 상충된다. 타당성 여부를 떠나 현실적인 문제도 많다.우선 첫번째 방안대로 할 경우 경영이 잘되고 있는 포철마저 부실기업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포스코경영연구소는 한보철강의 제품원가가 당 4백30달러 선으로 포철 제품에 비해 50~60%정도 비 싸다고 주장하고 있다.빚더미에다 경쟁력도 없는 부실기업을 포철에 억지로 떠맡기면 자칫.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 방안으로 할 경우 은행이 6조원대에 이를 대출금을 물리게 된다.한보철강의 경영이 빠르게 정상화돼 주식값이 오르면 다행이지만 상당기간 경영난이 지속될 경우 은행은 6조원의 대출금을 이자 한푼 못받고 묶이게 된다는 것. 또.부실 덩어리' 한보철강 주식을 공모한다 하더라도 일반인이얼마나 참여할 것인지도 미지수다.게다가 한국통신 주식의 매각도증시상황 때문에 계속 미뤄지고 있는 마당에 엄청난 물량의 한보철강 주식을 제때 공모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 다. 결국 한보철강의 국민기업화 방안은 특혜시비는 피할 수 있을지모르나 두고 두고 국민에게 부담을 지우는 졸작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많다. <정경민 기자><사진설명>기로에 선 한보-한보철강 당진제철소 내부.제3자 인수냐,국민기업화냐. 한보철강의 향후 처리방향을 둘러싸고 정부내에서도 관계자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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