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파문>수서사건때 당사자들이 거짓말 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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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수서사건 당시 관련자들이 보인 전면 부인→일부 시인→비리 탄로의 거짓말 고리는 이번에도 계속될 것인가. 검찰이 한보철강 비리의혹에 대해 본격 수사에 착수하면서 관련자들의.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태수(鄭泰守)한보그룹 총회장이 로비사실을 부인하고 있고 관련기관이나 채권 은행장들도“외압은 없었다”고 일관되게 부인하고있지만 세간에는“수서때처럼 몇차례의 수사과정을 통해 양파껍질 벗기듯 부패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있는 것이다. 수서사건 당시 최대의 거짓말쟁이는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 그는.의혹'여론이 거세게 일자 전혀 모르는 일인듯 91년 2월6일“성역없이 파헤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검찰의 수사결과.청와대 비서관과 여야 국회의원들의 소행'으로 발표되었지만 정권이 바뀐 95년 11월27일 鄭총회장으로부터 1백 50억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당시 언동이 새빨간 거짓이고 연극이었음이 만천하에 공개됐다.로비의 당사자인 鄭총회장도 수위(水位)를 조절해가며 곡예하듯 거짓말을 펴나갔다. 鄭회장은 盧대통령이 감사원에 철저한 감사지시를 내린 다음날인91년 2월7일 기자회견을 통해“정부나 정치권에 로비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또 2월12일 검찰에 소환되면서“한보는 로비한 적이 없다.왜 우리가 로비를 하나.주택조 합이 알아서 다 하고 한보는 공사만 했을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밤 검찰의 철야조사 과정에서 국회건설위 소속 민자당.평민당 의원에게 3천만~4억6천만원을 건넨 증거가 확인되자 이를 시인했다. 장병조(張炳朝)비서관도 거짓으로 시종하기는 마찬가지.그는 2월6일 청와대 기자들에게“업무관계로 鄭총회장과 아는 사이지만 수서민원을 부탁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그러던 張씨는 2월8일사표를 제출하면서“주택조합 민원처리와 관련해 사 회적 물의를 빚고 국민과 대통령께 누를 끼친데 책임을 느낀다”고 한발짝 후퇴했다. 검찰에 소환되던 2월14일까지도“서울시에 압력을 행사한 적이 없으며,한보 鄭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張씨는 이틀뒤 2월16일 2억6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거짓말과 오리발은 국회의원들이 더욱 심했다. 鄭총회장의 수서관련 특별청원을 국회에 소개한 이태섭(李台燮)의원은 2월8일 기자회견에서“지역구의 대형 민원으로 무주택자들이 국민주택 규모의 조합주택을 짓는다는 주장이 타당하다는 생각에서 도와주려 한 것”이라며“한보와의 관련 사실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李의원은 2월14일 2억원을 수뢰한 혐의로 구속 수감돼 징역 5년.추징금 2억원의 형이 확정됐다.야당인 평민당의 이원배(李元湃)의원은 2월9일 기자회견에서“나는 김대중(金大中)총재에게 단돈 1백만원도 전해준 적이 없다”며 펄쩍 뛰었다.“다른 정당(민자당 지칭)은 몰라도 나와 평민당은 로비자금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李의원은 그러나 2월14일 구속 수감되고 이틀뒤인 16일.양심선언문'을 통해“한보의 鄭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와 서린호텔 어느 방으로 갔더니.총재를 존경한다'며 연말에 쓰라고 2억원을 전해드리라고 해 이 돈을 권노갑(權魯岬)의원에게 전했다”고 자신의 주장을 번복했다. 李의원은 鄭총회장으로부터 모두 4억6천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92년 2월28일 대법원에서 4억6천만원을 추징.몰수당하면서 징역 10년의 형이 확정됐다. 한편 수서때 민자당 최고위원들이 알았느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김용환(金龍煥)민자당의원은 2월21일“90년 6월 1차 당정회의가 끝난뒤 내가 직접 세 최고위원께 회의내용을 보고한 바 있으나 결재를 받은 적은 없다”고 둘러댔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인 22일“90년 6월 수서당정회의후 7월중 별도로 세 최고위원에게 구두보고를 하고 사인(결재)을 받았다”고 말을 바꿨다. 특히 서청원(徐淸源)당시 민자당 제3정책조정실장은 2월16일검찰에 90년 8월17일 민자당 당정회의에서 수서택지 특혜분양을 결정한 내용의 문서를 변조해 제출했다. 수서주택조합에도 발송된 문서내용중 문제가 되는.90년 7월20일 최고위원및 대표최고위원이 민심수용(특혜분양을 뜻함)이 가(可)하다는 결재를 득(得)함'과.민원인들의 요구를 수용해줌이가하다는 민자당의 결론'이란 내용을 빼버렸다. 그러나 徐씨는 2월20일“당의 대표와 최고위원등 윗분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스스로 그 부분을 삭제하고 보냈다”고 변조사실을 시인해 물의를 빚었었다. 이처럼 관계자들은 자신의 연루사실을 포함한 실체적 진실에 대해 일단 거짓말로 강력하게 부인한뒤 수사진전이나 여론의 향배,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말을 바꾸는 일치된 행태를 보였다. 수서사건과 여러모로 흡사한 점이 많은 한보사태와 관련된 인사들의 주장과 진술에 그래서 의혹의 눈길이 모아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가 관심거리다. 〈박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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