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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逆轉의시대>4.누가 '上典'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빨라야 좋을 것 없다 달라지는 .美德' 남녀가 따로 있나 4누가 .上典'인가 직업귀천 .정말'없다 낡은 것이 좋다 고개 든 新婦 .딸딸이 아빠'가 낫다 초원 위의 내 집에서 살고파 .質'로 먹는다 한마디로 요즘은 누가 윗사람인지 헷갈리는 세상. 옛날 같으면“어떻게 감히”라는 감탄사가 튀어나올 만한 관계의역전현상이 곳곳에 보인다. 군대나 직장에서의 하극상(下剋上)이 심심치 않게 화제가 되는것도 바로 그런 세태의 하나..간 큰 남편'.간 큰 상사'시리즈가 지난해 부쩍 유행한 것도 이같은 현실을 반영하는 한 증거다.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된다던.나랏님'대신 풍자만화 주인공으로 대통령이 등장한 것은 오래전 일.학교나 집안에서도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의 의미가 달라졌다. 지난해 8월 부산의 가야고등학교에서는 성적이 상위 10%안에드는 학생들에게 교사들의 1학기 수업을 평가하게 했다. 이화여대.고려대등에서는 전체 또는 일부 교수의 강의에 대해 몇 년째 학생들의 강의평가를 실시해 왔지만 고등학교는 가야고가처음이었다.“어떻게 감히 제자가 스승을 평가할 수 있느냐”는 일부의 반발이 있은 것은 물론이다. 새 제도에 대한 찬반을 떠나 많은 선생님들이“학생들 눈초리가예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는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무조건적인 존경의 대상에서 추락한 것은 아버지들도 마찬가지.대기업 부장 박창욱(43.서울서초구방배동)씨는 고교 1학년 되는 딸 때문에 그렇게 좋아하던 권투경기를 거실TV로 마음 놓고본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지난 여름휴가는 딸아이만 떼놓고 갈 수도 없어 아예 포기했다.과외비 때문에 돈이 달린다면서도 아내는 이번 겨울에도 딸에게만 보약을 지어 주었다. 나이 든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달라졌다.요즘에는.시집살이'가아니라.며느리살이'라는 말도 들린다..통크(TONK:Two Only No Kids)족'노부부가 늘고 있는 것(본지 1월20일자 12면 보도)도 부분적으로는 이런 추세의 반영. 며느리.자식 눈치 보며 사느니 경제적 능력만 된다면 따로 사는 게 마음 편하다는 것이다. 역전현상이 두드러진 것 중 또하나가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다.한쪽에서는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부추긴다고 해서 개정노동법이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반면 이른바 3D업종에 속하는 직업에서는고용주들이 직원 눈치 살피기에 바쁜 경우도 많다. “실수해도 큰소리로 야단 한번 칠 수 없어요.새로 구하기도 힘든데 그만둔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간호사 대접이 어려워졌다는 성남시 소재 산부인과 개업의의 말이다. 실제로 대한의사협회에서 지난해 7월 발표한 간호인력 수급대책설문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개업의원 86곳중 89.5%인 77곳이 간호인력을 채용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심각도에 대해서도 67.4%가.매우 심각하다'는 생각이었다 . 이러다 보니“위아래가 없어졌다”는 탄식도 나올 만하다.하지만이런 현상에 대해 누구도 한마디로“잘못됐다”고 몰아붙이지는 못한다.왜일까. “신세대일수록 자기 주장이 강하다 보니 버릇 없이 행동하는 직원들도 있기는 해요.하지만 상사눈치 안 보고 시간 맞춰 퇴근하고 휴가일수 다 챙기는 후배들을 보면 자기 권리를 당당하게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또 컴퓨터나 영어 실 력이 나은부하직원에게 먼저 고개 숙여 도움을 청하는 상사들도 있죠.”(김영조.D건설회사 과장) “일부이긴 하지만 숙제검사에 수업시간을 10분 이상 소비하는 선생님도 있었어요.열린 교육의 시각에서 볼 때 수업의 주인공은 학생이 아닌가요.학생이 제 몫을 찾게 해야죠.경영적 관점에서도 수요자를 우선해야 하는 거고요.”(한보명.부산 가야고 서무과장) 하지만 역전된 관계가 바람직한것만은 아니다. 의무는 뒷전이고 권리만 앞세우는.얌채파'도 양산되고,그 와중에 아랫사람들로부터의 인기만 의식해 제대로 지도하기를 포기하는.부화뇌동파'도 늘고 있다.“사실 이제까지의 권위주의는.눈치주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아직은 과도기라. 눈치보기'현상이 거꾸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모든 인격체가 각자 자기 권리,자기 권위를 찾아가다 보면 진정한 평등이 이뤄지지 않겠습니까.” 고려대 교무처장 전성연(全成連.교육학)교수는 역전의 시대에 희망을 걸어본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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