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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을읽자>下.새로운 가치 어디서 찾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스웨덴 출신 여성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헤지가 지은.오래된 미래'(녹색평론사刊).광고 한번 없이 지난해 9월 첫선을 보인 이후 1만여부가 나가는 호응을 얻고 있다.대학가 서점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반응이 좋다.저자는 히말라야 고원의 작은 마을.라다크'에 16년간 살며 유서깊은 공동체가 개발바람에 밀려 파손되는 과정을 고발한다.번역자 김종철(영남대)교수는“사회.생태적위기에 대한 명료한 분석이 독자들을 파고든 것같다”고 말한다. 20세기말을 맞아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과학.기술의 진보를확신하며 낙관주의가 팽배했던 1백년전과 정반대다.종교.이념.가족.공동체 같은 전통적인 가치가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몰리면서그동안 사회를 떠받쳐온 신념체계가 급속히 무너 지고 있다.더욱이 전통윤리를 대신할 가치관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전세계 석학들은 이런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대안을 찾고 있을까.우선 자연과 인간을 분리한,나아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한 서구식 합리주의 극복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날로 심각해지는 환경오염.생태계 파괴도 결국 이 같은 2분법적 사고에서 비롯됐다는 것.인간은 제쳐두고 앞만 보고 달려온 과학기술의 맹목성도 심판대에 오른다. 93년 타계한 독일 철학자 한스 요나스의.책임의 원칙:기술시대의 생태학적 윤리'(서광사)는 이같은 비판의 중심에 서 있다.요나스에게 현재 지구는 인간의 기술적 착취에 의해 신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인간의 자유가 기술을 통해 실현되고,기술에 의한 환경오염은 어쩔 수 없는 대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지구의 병은 치유할 길이 없다”고 역설한다. 프랑스 문명비평가 에드가 모랭에게도 지구는 절대불가결한 조건이다.문제는 20세기말 상황이 불확실성 그 자체라는 것.사회.자연현상 무엇하나 정확히 예측할 수 없게 됐다.그렇지만 그는.지구는 우리의 조국'(문예출판사)에서 “우리 모두 지구라는 운명공동체에 속해 있고,또 지구 속에서 굳게 맺어져 있다”는 연대의식을 강조한다. 전문가들은 특히 인간을 위협하는 가장 큰 공적(公敵)으로 환경파괴를 꼽는다.환경파괴는 곧 인간파멸로 이어지기 때문.따라서자연에 대한 새로운 눈뜨기를 공통적으로 요구한다.동국대 강사 구승회씨의.에코필로소피'(새길)는 이런 환경친화 론적 목소리를다각적으로 정리했다. 최근엔 생태계의 위기극복 지혜를 인간과 자연을 하나로 생각하는 동양의 전통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자연에 대한 이같은 사고의 전환은 과학에도 영향을 미쳐 프리초프 카프라의.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범양사)이나 일리야프리고진의 .혼돈으로부터의 질서'(고려원미디어)등은 분석.해체로 무장한 근대과학을 비판하고 조화.통합의 세계 를 모색하는 신과학이론을 개척했다.최근 유행하는 카오스.퍼지등의 용어도 결정적 인과론보다 우연.역설이 지배하는 자연을 내세운다. 시인 김지하씨는 이같은 철학.과학적 반성을 용해시켜 생명사상.생명운동을 펼친다..생명과 자치'(솔)에서 그는 세기말의 다양한 증후를 분석하면서 작은 미생물부터 거대한 우주까지 걸쳐 있는 생명의 생성변화를 새로운 문명의 전형으로 제 시한다. 정복.탐구의 대상이 아닌 인간과 함께 살아 숨쉬는 자연이 강조됨은 물론이다.미국의 대표적 문명비평가 제레미 리프킨도.생명권 정치학'(대화출판사)에서 지구안의 모든 생명체를 공평하게 존중하는 가치관에 기초한 일상생활의 근본적 변혁을 촉구하고 나선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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