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에 뉴패션 선보이기-세계 유명디자이너들 다투어참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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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색과 실루엣으로 표현되는 무언(無言)의 대사.' 이는 영화속에서 의상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말.등장인물의 성격을 제대로 형상화해내기 위해선 여러 마디의 대사보다 한벌의 옷이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계의 최근 움직임은 이런 사실을 잘 웅변해준다.얼마전 국내 개봉된.로미오와 줄리엣'에선 90년대판 비련의 주인공들에게인기정상의 이탈리아 디자이너 프라다의 옷을 입혔다. 참혹한 폭력의 도가니속에서 순수하고도 위험한 사랑을 불태우는로미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扮)와 줄리엣(클레어 데인스扮)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그려내는데 흰색과 은색을 주조로한 프라다의 의상이 제격이라는 제작진의 판단 때문이었다. 팝스타 마돈나를 캐스팅,화제를 불러모은.에비타'역시 주인공의패션에 온갖 공을 들인 영화다.디자이너 페니 로즈가 재현해낸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퍼스트레이디 에바 페론의 의상들은 영화 개봉전부터 전세계에.에비타 룩'열풍을 일으켰을 정도.잘록한 허리의 재킷과 넓게 퍼진 스커트등 낭만적인 옷들 뿐만 아니라 깨끗이 빗어올린 머리모양과 창백한 얼굴에 빨간 입술을 강조한 화장법,.페라가모'가 수제작한 정교한 구두들까지 유행의 전면에 나섰다. 이처럼 영화와 패션이 결합,상승작용을 일으킨 예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스튜디오마다 전속 디자이너를 두고 그레타 가르보.마를렌 디트리히등 희대의 스타들에게 독특한 패션을 선사한 20~50년대 할리우드 전성기부터 그 뿌리를 두고 있 는 것이다. 이후 지방시가 오드리 헵번을 통해 만들어낸.헵번 룩',.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페이 더너웨이가 연출한.보니 룩',디자이너 랠프 로렌과 로버트 레드퍼드의 절묘한 만남인.개츠비 룩'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새로운 패션이 탄생하는 장으 로서성공적인 자리매김을 해왔다. 하지만 시대변화와 함께 영화는 TV와 광고.뮤직 비디오등에.패션의 선두주자'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던게 사실.요사이 영화계에 불고 있는.패션마케팅'바람이 과연 패션과 영화가 밀월관계를 유지했던 호시절을 되돌려줄 수 있을까에 세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시대물이나 특수의상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곤 제작비중 영화의상에 대한 지원이 미미했던 것이 저간의 실정.지난해흥행에 성공을 거둔.은행나무 침대'와.귀천도'에서 디자이너 박윤정씨와 이정우씨가 각각 의상을 책임졌던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정우씨는“젊은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영화의상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지만 제작현실이 열악해 안타깝다”는 의견. 현재 촬영중인 영화.홀리데이 인 서울'의 스타일리스트 김서령씨는“기존 브랜드의 옷을 빌려다 쓰는 현재의 시스템으론 그 영화에 걸맞은 개성적인 패션연출에 한계가 있다”면서“하지만 머지않아 세계적 추세에 맞춰 영화의상의 비중이 차차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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