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파산신청 급증…"60~70%가 카드빚 돌려막다 찾아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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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뱅크 출범
신용불량자 지원은행(배드뱅크)인 한마음금융㈜이 공식 출범했다. 20일 서울 역삼동 한국자산관리공사 1층에 문을 연 한마음금융㈜ 창구에서 신용불량자들이 상담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서울에 사는 金모(55.여)씨는 1992년 남편과 이혼했다. 위자료 명목으로 3100만원을 받았으나 소송 비용 등을 빼고 나니 1000만원밖에 남지 않았다. 구내식당 일용직으로 일하며 60여만원의 월급을 받았지만 외환위기 때 직장을 잃었다. 이후 파출부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다 친구의 권유로 다단계 판매에 손을 댔다. 하지만 돈만 떼이고 말았다. 金씨는 원금과 이자를 합쳐 3600여만원의 빚을 지게 됐다.

모 전자회사에 다니는 朴모(35)씨도 지난해 친구가 카드를 빌려가 쓰는 바람에 5000만원의 빚을 지게 됐다. 신용불량자로 등록되면서 직장을 잃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올해 초 신용불량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어렵게 다시 직장을 얻었다. 하지만 빚을 갚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에 두 사람은 최근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파산 신청을 냈다.

경기 침체로 가계부채가 늘어나면서 빚을 갚지 못해 법원에 파산 신청을 내는 개인 파산자가 급증하고 있다. 20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 1~3월 개인 파산 신청은 180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84건)에 비해 1.6배 늘어났다.

이는 2002년 전체 건수(1335건)를 넘어선 것이고, 지난해 연간 건수(3856건)의 절반에 육박(47%)한 것이다. 개인 파산 신청이 받아들여진 경우는 지난 1~3월 1055건으로 이 역시 지난 한해 전체 건수(2295건)의 절반 가까이(46%) 기록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개인파산 신청자의 60~70%는 카드 빚을 돌려막다 못 버티고 찾아오는 사람들"이라며 "2~3년 전만 해도 파산 신청을 부끄러운 일로 생각하는 분위기였으나 요즘에는 당당한 표정들"이라고 말했다.

98년 350건에 불과했던 개인 파산 신청건수는 99년 503건으로 늘었다가 2000년 329건으로 줄었다. 그러나 2001년과 2002년 각각 672건과 1335건으로 약 두배씩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2002년에 비해 세배가량(289%) 급증했었다. 법원에서 파산 결정을 받은 개인 파산자 수는 98~2001년까지는 100~200명 선을 유지하다가 2002년 581명으로 껑충 뛴 뒤 2002년 2295명, 지난해 3632명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개인 파산=현재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진 개인이 법원의 허가를 통해 부채를 탕감받는 절차로, 성실한 파산자에게 '갱생(更生)'의 기회를 주기 위한 제도다. 파산선고 후 법원에 '면책(免責)'을 신청해 받아들여지면 파산자로서의 모든 불이익을 면제받을 수 있고 채무도 모두 취소된다. 그러나 재산을 숨겨놓고 거짓으로 파산을 신청했거나 낭비 또는 도박 때문에 빚을 진 경우 등은 면책 대상이 되지 않는다.

김현경 기자<goodjob@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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