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단기 이익 노렸어도 당시 매각 결정 존중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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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원 전 외환은행장이 24일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에 대한 선고공판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김성룡 기자]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의 외환은행 ‘불법 인수’ 논란이 가닥을 잡았다. 서울중앙지법이 24일 외환은행 헐값 매각 혐의로 기소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배임죄 증거 없다”= 변양호 전 국장 등에 대한 무죄 판단의 핵심은 배임죄 성립 여부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전망치 산출과 론스타의 인수 자격을 부여하는 데 변 전 국장 등의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우선 재판부는 ▶외환은행이 6개월 사이에 상이한 수치의 BIS 비율 전망치를 산정했고 ▶삼일회계법인의 자산가치평가 때 잠재부실 증가 요인만 부각됐으며 ▶변 전 국장이 업무시간 외에 론스타 측 스티븐 리와 만난 점 등 일부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들 행위가 배임죄가 되려면 변 전 국장 등의 행위가 임무 위배에 해당해야 하고, 소속 기관에 손해를 끼쳤어야 한다. 이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은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변 전 국장이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 보유 외환은행 주식 매각에 대해서는 배임죄 적용 대상이지만, 민간은행인 외환은행의 신주 발행이나 독일 코메르츠은행 보유 외환은행 주식 매각에 대해서는 아예 배임죄 적용 대상도 아니라고 봤다.

그러면서 외환은행의 BIS 비율 산정에 대한 부적절한 측면은 긴박한 경영상황에서 대주주 등을 설득하기 위해 이뤄진 것이지 론스타에 유리하도록 ‘조작’한 게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재경부와 외환은행, 금감위 등이 론스타에 인수 자격을 주기 위해 은행법상 예외 조항을 인정해 줬다는 검찰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외환은행은 2003년 당시 대규모로 자본을 확충할 필요가 있었고 1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할 의사가 있는 투자자가 론스타밖에 없어 론스타가 원하는 대로 경영권 이전을 수반하는 매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설령 론스타가 단기적인 이익만을 노린 재무적 투자자라 하더라도 외환은행 경영진과 대주주인 수출입은행 및 코메르츠은행의 결정은 경영상 또는 정책적인 판단으로 존중돼야 한다는 것이다.

◆“부적절성 문제는 큰 틀서 판단”=재판부는 외환은행 매각 협상 과정에서 “절차상의 문제도 없었다”고 판단했다. 외환은행이 론스타와 뉴브리지캐피털의 경쟁구도를 조성했지만 뉴브리지 측이 투자를 포기한 뒤 다른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론스타에 인수자격이 부여된 것이 은행법상 ‘예외조항’을 적절히 해석한 결과였는지에 대해서는 형사재판이 아닌 행정소송의 영역으로 보고 따로 판단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재판부는 “피고인 개개인으로 보면 부적절한 행위가 더러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부적절성 여부는 외환은행 매각이라는 큰 틀에서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원의 이런 판결에 따라 2003년 8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 끊임없이 제기된 헐값 매각 논란이 일단락된 셈이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과 맞물린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으로 기소된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에 대해서도 지난 6월 항소심 재판부가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검찰이 1심 판결에 불복해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혀 법정 공방은 대법원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성우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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