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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과천서부터 기는 경제관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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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15일 올해 경제정책방향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일부 각료들이 현재의 경제와 시국상황을 남의 일처럼 쳐다보고 있다”고 질책했다.이 일을 계기로 장관들이 눈에띄게 바빠졌다.당장 그날 오후 한승수(韓昇洙)부 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은 기자실을 찾아가“매일 기자단에 파업에 따른 생산.수출 차질액을 알려주겠다”고 약속했고,이튿날 어김없이 직접 자료를 들고 와서 설명했다.전에 없던 일이다.
불난 호떡집처럼 갑자기 부산해진 경제부처 분위기는 17,18일 1박2일의 합숙토론회로 이어졌다..경제활력 회복을 위한 고위 공직자 대토론회'란 이름으로 국장급 이상 2백30여명이 참석한 이 행사는 경제부처의 맏형인 재정경제원이 주 도했다.
하지만 이날의 주인공은 주최자인 韓부총리가 아닌 이석채(李錫采) 청와대 경제수석.부총리는 개회사와 폐회사란 이름으로 이야기했고,李수석에게는.경제수석과의 대화'란 자리가 마련됐다.
국가경쟁력 10% 높이기 대책부터 노동법 개정.금융개혁등 주요 정책을.요리하는'주역과의 만남인지라 참석자들의 이목이 집중됐다.당초 45분으로 예정됐던 시간이 30분이나 길어졌다.비공개여서 토론이 활발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결국.대화 '가 아닌 李수석의 일방적인 훈시성.강연'으로 끝났다.경제관료들의 구태의연한 근무자세를 질타하고 각성을 촉구했다.분임토의에서도 자성의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최근의 경제부처 관료들의 사기는 말이 아니다.분발의 기운은 찾아볼 수 없고,청와대 눈치보기에 급급하는 행태는 군사정권때나 문민정권때나 별 다름이 없다는 젊은 과천관료들의 실토다. 금융개혁의 폭탄선언으로 청와대에 목을 잡혔고,노동법 재개정을 둘러싼 정치적 타협으로 그나마의 체면도 땅에 떨어졌다는 것이다.여기에 한보문제까지 터져나오자 정말 사면초가의 분위기다.매사가 청와대의 뜻이 아니면,정치권이 하자는대로 끌 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자조(自嘲)가 깊이 깔려 있다.
그전에도 이따금 경제팀의 양대 축인 부총리와 청와대 경제수석간의 알력이 문제가 됐다.지금은 알력이라기보다 청와대 독주 성격이 짙다.
연극이 공연될때 혹시 배우가 대사를 틀릴까봐 막 뒤에서 대사를 읽어주는.프롬프터'라는 역할이 있다.유능한 프롬프터는 배우에게는 잘 들리게,그러나 관객들에게는 절대 한마디도 안들리게 대사를 읽어줘야 한다.그런데 프롬프터가 무대로 ■ 어나와 직접대사와 연기를 한다면 그 연극은 어찌될까.청와대 수석은 바로 프롬프터같은 것이 아닐까.
양재찬 경제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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