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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의 FOOD+] 쌈, 바다와 산이 한 입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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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텃밭에 땅을 뚫고 뾰족이 올라오던 새싹의 봄이 이제 여름이 됩니다.

양기 가득한 햇빛을 받고 자란 풋풋한 푸성귀들이 한창이고요.

요즘 점심시간이 지나면 아마 꾸벅꾸벅 조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점심에 쌈밥 먹고요. 싱싱한 푸성귀로 몸에 재충전하고 '깜빡~'하고 꿀보다 더 단 오수를 즐기고 나면 오후 내내가 행복할 겁니다.

어릴 적 제가 살던 시골집은 집 앞 텃밭은 물론이고 집안에도 작은 밭이 있었어요. 뒤뜰 꽃밭 크기 정도의 것이에요. 고추랑 상추 같은 거 몇 포기씩 심어 어머니가 밥 짓다가 텃밭까지 뛰어가는 발품을 줄여 주느라 아버지가 베푸신 배려지요. 이맘때면 텃밭에 아주 여리고 곱디고운 색의 푸성귀들이 자랍니다. 어찌나 여린지 봄비만 와도 잎이 축 늘어질 정도였답니다. 속이 비칠 정도로 야들야들하고 윤기가 자르르 한 것도 있고요. 상추.쑥갓.실파가요. 지금은 정말 모든 채소가 쌈이 되지만 예전에는 상추.쑥갓.실파, 그리고 여름에 연하게 나는 시금치가 쌈의 전부였던 것 같아요.

상추는 겉잎부터 따고 쑥갓은 뿌리째 뽑지 않고 줄기를 잘라 쓰면 옆으로 곁가지가 나거든요. 실파는 정말 가늘어 매운 맛은 조금도 없답니다. 작은 소쿠리를 가지고 텃밭에 나가면 금방 한가득 뜯어 펌프로 물을 퍼서 여러번 정성스레 씻습니다. 너무 연해 혹여 상할까 애지중지하면서요. 할머니는 너무 흔들어 씻지 말고 꼭 잎의 뒷면도 살피며 씻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마지막 헹구는 물엔 참기름을 한 방울 떨어뜨렸어요.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왜 참기름을 넣느냐고 할머니께 여쭈면 기생충 알 떨어지라고 그런다 하셨거든요. 그런데 그게 과학적인 근거가 있더라고요. 채소의 카로틴은 지방과 함께 먹어야 흡수가 잘 된다는 거 아마 가정 시간에 다 배웠을 거예요.

채소 씻은 것을 가지런히 모아 쥐시고는 휙휙 털어 물을 빼셨어요. 왜 쌈 싸먹을 때 물기 제대로 안 털면 손목을 타고 주르르 흐르잖아요. 그리고 꼭 끝은 잘라내셨어요. 왜 줄기 부분은 쌈 싸먹을 때 꼭 잘라 놓게 되잖아요.

보통 식구들끼리 먹을 때는 그냥 고추장이나 된장만 떠다 놓고 싸 먹어도 꿀맛이었어요. 보리밥 지어서 손에 상추 한잎 깔고, 그 위에 쑥갓과 실파 접어서 얹고. 다음은 고추장을 쓱 문지르고 밥 한숟가락 떠 얹어서 모아 쥐곤 볼이 미어져라 우겨넣지요. 한쪽 뺨이 왕사탕 문 것처럼 볼록하게 나오면 짓궂은 오빠가 꼭 손가락으로 찔러서 밥상머리에서 싸우곤 했답니다.

쌈을 싸려고 하면 할머니는 꼭 또 한마디 하셨어요. 쌈은 뒷면에 싸는 것이라고요. 이유는 보통 쌈을 씻을 때 앞만 보고 너무 정성스레 씻으니 뒷면 검사를 해야 한다는 거고요. 또 한가지 이유는 앞면이 부드러워 잘 넘어간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여름에 손님이라도 오시는 날이면 어머니나 아버지가 장에 가세요. 고기도 한칼 끊어야 하고 병어도 네댓 마리 사야 하니까요. 그리고 아끼고 아끼시던 마른 굴비 몇 마리를 두루미에서 빼시고요.

할머니는 봄에 굴비를 사서 쉬파리가 붙을까 노심초사하시면서 모기장으로 덮개를 만들어 정성스레 말린 뒤 독 속에 넣어 두셨다가 정말 귀할 데 써야 할 때만 굴비 두루미에서 한 마리씩 빼셨거든요. 또 할아버지가 입맛이 없어 하시면 굴비 한 마리를 빼셨어요. 일단 다듬이 방망이로 자근자근 두드려 껍질을 벗기고 살을 쪽쪽 찢지요. 그리곤 참기름이나 고추장을 곁들여 찬밥에 물을 말아 할아버지께 차려 드리셨어요. 오이지하고요. 짭짜름한 게 입맛 살리는 데는 최고였나 봅니다. 굴비 껍질 벗긴 것하고 머리하고는 뒀다가 찌개를 끓여 또 할아버지 상에 올리곤 하셨어요.

병어는 포를 떠 고추장에 조리시고, 쇠고기 굵게 채 썰어 불고기 양념해 조리셨어요. 정말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은 날이랍니다. 아마 여러 식구가 둘러앉아 먹었기에 더 꿀맛이 아니었나 싶네요.

이번 주말에는 멀리 있는 가족끼리 모이기 어려우면 이웃끼리라도 모여 쌈밥 파티 한번 해보세요. 쌈밥 싸가지고 가까운 공원에 가 돗자리라도 펴고 먹으면 더 좋고요. 집집마다 한가지씩 만들어 모이면 어렵지도 않아요.

노영희 푸드스타일리스트<hihi61@hitel.net>
사진=권혁재 전문기자<shotgun@joongang.co.kr>

■ 노영희식 담아내기

■쌈 채소=여러 가지를 준비해 크고 우묵한 그릇에 모아 담는다. 그냥 소쿠리에 담아 놓고 먹을 때와는 달리 우선 눈이 즐겁다. 반드시 물기를 완전히 털고 줄기 끝을 잘라내는 것 잊지 말도록. 밥상이나 식탁 가운데 놓으면 센터피스가 된다.

■밥=쌀밥보다 보리를 섞은 밥이나 현미 등을 넣고 지은 밥이 좋다. 밥은 고슬고슬하게 지어 참기름과 소금을 약간 넣고 섞어 한번에 싸 먹기 좋은 크기로 갸름하게 뭉친다. 기다란 그릇에 밥 뭉친 것을 담고 위에 실파 송송 썬 것 뿌리고 다시 얹는다. 그래야 밥이 서로 붙지 않는다. 밥그릇에서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얹고 하는 번거로움도 줄일 수 있다.

■곁들임=장똑똑이, 굴비, 수삼채, 병어 조린 것을 긴 그릇에 담쟁이 잎이라도 한장씩 깔고 얹으면 한층 맛깔스러워 보인다.

■고추장볶음=되직하게 조려야 떠다가 얹을 때 떨어지지 않아 좋다. 작은 종지에 각자 담아내면 좋다.

■쌈에 어울리는 음식 만들기

◆고추장볶음

■재료=고추장 1컵, 쇠고기 70g(진간장 1작은술, 설탕 1작은술, 파 다진 것 2작은술, 마늘 다진 것 1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참기름 1작은술), 참기름 1큰술, 배즙 4큰술, 설탕 1큰술, 꿀 2큰술, 잣 2큰술

■만드는 법=쇠고기는 곱게 다져 양념한다. 두꺼운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쇠고기 양념한 것을 볶는다. 고기가 볶아지면 배즙을 부어 보글보글 끓이다가 고추장을 섞어 뭉근한 불로 20~30분 정도 가끔 저어주면서 되직해지게 조린다. 설탕과 꿀, 참기름을 넣고 식힌 다음 잣을 넣고 섞는다.

◆장똑똑이

■재료(4인분)=쇠고기 치맛살 양지 200g(설탕 1큰술, 배즙 1큰술, 참기름 1/2큰술), 양념장(진간장 3/2큰술, 마늘 다진 것 1/2큰술, 파 다진 것 1큰술, 후춧가루 약간), 꿀 1큰술

■만드는 법=쇠고기는 결대로 4㎝ 길이로 채 썬다. 쇠고기에 설탕과 배즙, 참기름으로 밑간을 해 10분쯤 둔 뒤 다시 양념장 재료를 섞어 양념을 한다. 팬을 달궈 쇠고기를 볶다가 고기가 익으면 고기를 팬의 한쪽으로 밀어놓고 팬을 기울여 국물이 자글자글해질 때까지 조리다가 꿀을 넣고 다시 고기를 섞어 재빨리 조린다. 그래야 고기가 딱딱하지 않고 윤기가 난다. 넓은 접시에 쏟아 재빨리 식힌다.

◆병어 고추장조림

■재료(4인분)=병어 1마리(포 뜬 살 200g 정도, 생강편 1쪽분, 술 1큰술, 소금 1/5작은술, 참기름 1/2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생강 채 썬 것 1큰술, 고추장 2큰술, 진간장 1큰술, 술 1큰술, 조미술 2큰술, 설탕 1큰술, 참기름 1작은술

■만드는 법=병어는 포를 떠 가시를 발라내고 사방 2㎝ 크기로 썬다. 생강편, 술, 소금, 참기름과 후춧가루로 밑간해 10분 정도 두었다가 생강은 골라내고 생긴 물을 따라낸다. 팬에 고추장, 진간장, 술, 생강, 조미술, 설탕을 넣은 뒤 보글보글 끓으면 병어를 넣고 조린다. 주걱으로 뒤적이지 말고 한 면이 다 익으면 살짝 뒤집고 팬을 흔들어 조려야 생선살이 부서지지 않는다. 마지막에 참기름을 넣고 흔들어 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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