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선 신림역 7번 출구 ‘노점상 시범거리’는 5m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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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호 12면

드라마 속에 자주 등장하는 포장마차. 그만큼 포장마차는 우리 가까이에 있고 언제든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친숙한 곳으로 기억돼 있다. 그러나 최근 서울 시내의 포장마차 거리에 소용돌이가 치고 있다. 서울시에서 추진 중인 ‘노점상 시범거리 조성’ 사업 때문이다. 이 사업은 구마다 시범거리를 지정해 규격화된 디자인의 노점상이 규정된 시간에만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노점상의 생계와 디자인 도시 정책을 조화시키겠다는 서울시의 계획은 과연 어떻게 현실화되고 있을까. 취재팀이 그 현장을 찾아가 봤다.
 
불만 끊이지 않는 시범거리
지난해 11월부터 시범거리 사업이 시행 중인 서울 관악구 신림사거리. 지난해 12월 이곳을 찾았을 때 2호선 전철역 7번 출구 쪽 노점상들의 불만은 고조돼 있었다. 신림사거리의 다른 시범거리는 전철 출구로부터 50m 이내로 지정했지만, 7번 출구만 출구에서 5m 이내로 짧게 정해 놓은 것. 7번 출구는 8층짜리 패션 몰과 학원·은행·외식업체 건물이 들어서 있어 유흥가가 밀집된 3·4·5·6번 출구 못지않게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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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의 노점상 대표를 맡고 있던 머리핀 노점상 한모씨는 시범거리 지정의 공정성을 문제 삼았다. 그는 “왜 우리 쪽만 시범거리를 짧게 내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11월 현재 한씨 등이 장사를 하던 노점상 자리는 비워졌다. 서울시가 ‘생활질서 확립 50일’ 계획에 따라 도로법을 엄격히 적용해 깨끗이 정리한 것이다.

서울 강남역 일대의 경우 강남대로가 디자인 거리로 지정되면서 올 7월부터 노점상 운영이 금지됐다. 8월 강남역을 찾았을 당시 서초·강남 노점상연합회는 천막을 치고 항의 농성을 하고 있었다. 이달 다시 가 본 강남역에는 농성장이 사라진 자리에 미니 공원을 조성하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농성을 거두는 대신 강남역 7번 출구 오른쪽 골목에서 노점상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협상한 결과였다. 하지만 노점상 거리로 확보된 구역의 구체적 운영 방법에 관한 협의가 아직 끝나지 않아 논란의 소지가 남아 있다.

1. 전철 2호선 신림역 5번 출구. 50m의 구역이 ‘노점상 시범거리’로 지정되면서 규격화된 노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2. 5m 이내로 시범거리가 짧게 지정된 같은 역 7번 출구 쪽은 지난 8월 찾았을 때만 해도 노점상들이 포장마차를 열고 있었지만 3. 이달 다시 갔을 때는 깨끗이 정리된 상태였다.

서울시, “쾌적한 명품 도시 위해 불가피”
서울시는 “시범거리 조성 사업은 쾌적한 명품 도시를 건설해 관광객 1000만 명 시대를 열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오세훈 시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생계형 노점상은 보호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되 불법 노점에 대한 단속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문제는 추진 일정에 맞춰 ‘밀어붙이기’ 식으로 조성 사업이 추진되면서 생계형 노점상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한나라당 유정현 의원은 지난달 서울시 국감에서 “서울 시내 3366개 노점 가운데 시범사업 지역으로 인가받은 노점은 전체의 24%인 805개에 불과하다”고 제시했다. 특히 현재 금지구역으로 지정된 동대문상가 앞의 야시장과 강남대로·관악로 일대 등은 하루 유동인구가 수만 명이 넘는 곳이다. 이런 지역을 옆에 두고 한적한 곳을 허용 구역으로 지정한 데 대해 노점상들은 ‘장사 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누가 오뎅 하나 먹으려고 몇 십 걸음을 걸어오겠느냐”는 것이다.

취재팀은 서울시 가로환경개선팀 담당자에게 “디자인 거리와 노점상 생계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하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어려운 분들이 장사를 하는 것은 알지만 그것은 보건복지부 소관이에요. 서울시 입장에서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디자인이겠지요.”

개인 사업이 망한 뒤 강남역에서 토스트를 팔던 최승규씨가 노점상을 시작한 것은 2002년. 하루 종일 토스트를 팔아도 한 달에 손에 쥐는 것은 80만~110만원에 그친다고 했다. 최씨는 현재 학동역 10번 출구 앞으로 옮겨갔다. 종목도 떡볶이로 바꿨다. 그는 “아이들은 할머니 집에 있고, 7년째 월세를 전전하고 있다. 나 같은 사람에게 노점상은 최후의 보루”라고 했다.

가톨릭대 조돈문(사회학) 교수는 “노점상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점진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디자인과 노점상 생계 보호의 두 가지 목적을 모두 이룰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거리에서 디자인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진 풍경을 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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