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차 3사 몰락의 진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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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호 30면

제너럴 모터스(GM)와 IBM은 ‘기업 아메리카’의 간판이었다. 기업으로서 결정적인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경영자들도 결코 무능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들은 왜 쇠락했을까. 휼렛패커드의 전 최고경영자 류 플렛은 “과거 성공했던 공식과 패턴을 너무 오랫동안 고집한 것이 이들의 진정한 실수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GM을 비롯해 포드·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3사는 파산이냐 정부의 긴급구제냐의 절박한 갈림길에 서 있다. 극심한 판매 부진과 신용경색으로 3사 모두 현금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려 있다. GM은 162억 달러, 포드는 189억 달러를 현금으로 갖고 있지만 현재의 자금 고갈 속도를 감안하면 내년 4월까지 버티기 힘들다고 한다. 크라이슬러를 지난해 인수한 사모펀드회사 서버러스는 1년여 만에 투자금액을 다 날리고 자동차산업에서 손을 뗄 채비를 하고 있다. 최근 GM과의 합병 협상마저 결렬돼 자력 생존은 불가능한 상태다.

1980년대 75%나 됐던 3사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48%로 추락했고 연간 판매대수도 1700만 대에서 1100만 대로 급감했다. GM의 주식은 가치를 거의 잃어버렸다. 도이체방크는 목표주가를 0달러, 바클레이캐피털은 1달러로 설정했을 정도다. GM의 경우 자동차 판매보다 자동차 신용사업 부문에서 더 많은 돈을 벌어 왔다. 하지만 산하 크레디트 회사(GMAC)가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차를 구입하는 고객들에게 융자를 해오다 금융위기로 자금 융통 길이 막혀 이윤 창출의 주요 원천이 막힌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구제해 주지 않으면 몇 달 내 파산이 불가피하다고 GM 측은 읍소한다. 포드는 형편이 좀 나은 편이지만 GM 및 크라이슬러와 똘똘 뭉쳐 의회로, 정부로, 오바마 당선인 측으로 사력을 다한 로비를 전개 중이다. 의회 민주당 지도부는 구제금융에 호의적이고 특히 자동차노조(UAW)는 오바마와 민주당 후보를 강력 지지해 왔다. 그러나 미국 소비자와 납세자를 위해 파산토록 내버려둬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3사는 이미 부시 행정부로부터 연료 효율성 향상 연구비로 250억 달러의 장기저리 융자를 약속받은 바 있다. 이 돈 말고 유동성 문제 해결을 위해 이미 의회에서 승인이 난 7000억 달러의 긴급 구제금융자금에서 250억 달러를 긴급 지원해 달라고 매달리고 있다. 3사는 위기 원인을 금융경색에 따른 판매 부진 등 외부 요인으로 돌리며 긴급 지원이야말로 재앙적 붕괴로부터 미국 경제를 구하는 길이라며 설득에 안간힘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일은 3사 몰락의 진정한 원인이 외국 경쟁업체의 불공정행위 등 외부 요인이 아닌 그들 내부에 있다는 점이다. 소형화와 연료절약형 소비 추세를 외면하고 그들만의 성공 방식에 안주해 온 것이 그 첫째다. 높은 연비(燃比)를 비웃고 기름 많이 먹는 SUV와 픽업트럭 붐을 조성하며 노다지 꿈에 젖어 왔었다.

노조와의 너무 관대한 협약으로 제조원가 및 생산성 향상 면에서 미국 내 외국자동차 메이커와 경쟁이 되지 않는 고비용 구조가 그 둘째다. 미 자동차 3사의 임금과 연금·보건의료 혜택을 포함한 시간당 총보상급여는 평균 72.31달러로 미국 내 일본 자동차업체들(평균 44.20달러)에 비해 29달러(60%)가 더 많다. 3사는 일시적으로 해고하면 재취업할 때까지 급여를 주고, 퇴직자에게도 최소 한도의 보건의료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GM은 2년 전까지만 해도 연간 50억 달러를 보건 혜택에 지출했다. 3사의 전성기 시절 체결된 관대한 협약은 파업을 위협하는 UAW의 막강한 힘 때문에 골격이 그대로 유지돼 왔다. 문제는 미국에서 조업 중인 일본과 독일 등 외국 회사들이 이보다 훨씬 작은 혜택을 제공하면서 이익을 내고 미국 시장의 3분의 1을 점유했다는 사실이다.

3사는 국내 시장에 안주하며 글로벌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모델 개발에도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품질을 떠나 덩치가 거추장스럽고 유지비가 많이 드는 미국 차가 미국 내에서도 갈수록 외면당하는 판에 유럽과 아시아에서 인기가 있을 리 없다. 한국의 미국 차 연간 수입 규모가 5000대에 불과한 것은 ‘무역왜곡’이나 불공정행위와 관련이 없는 시장의 선택이다. 한·미 간 자동차 교역 불균형이 오바마가 내건 ‘불공정과의 싸움’의 한 전선이 된다면 이는 전적으로 핵심을 잘못 짚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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