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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칼럼>빅뱅과 금융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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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빅뱅'이란 말이 범람하고 있다.영국의 86년.빅뱅'은 런던증권거래소의 개방이었다.핵심 내용은 위탁수수료 자유화로 런던의외국증권거래소에 대한 경쟁력 확보가 목표였다.당시 수수료 수입에 의존하고 있던 브로커는 매매중개만으로 생존이 불가능하게 돼시장조성전담 조버(jobber)와 겸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또 거래소 회원권을 은행등 외부금융기관,심지어 외국금융기관에까지 개방했다.
그 배경을 보면 80년대 들어 국제금융거래의 급증으로 금융시장간 경쟁이 격심해졌고,전자통신 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금융상품과 기법이 개발됐다.국영기업의 민영화로 대규모 주식상장이 빈번해졌고 79년 외환자유화 이후 해외증권에 대한 수 요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그러나 런던은 브로커와 조버의 업무분리,인수가 주업무인 머천트뱅크의 거래소 참여제한,주문자동처리시스템 미비등국제금융시장으로서의 면모를 잃어가고 있었다.
빅뱅 결과 한편으로 위탁수수료및 거래세가 대폭 인하돼 거래가활성화됐으나 다른 한편으로 증권회사들은 살 길을 찾아 특화하거나 다른 회사와 합병하는등 일대 개편이 일어났다.몇몇은 위탁매매.투자자문.인수.합병(M&A)등 복합업무를 행 하는 증권회사로 변신하는데 성공했으나 그나마 대부분 90년대 들어 외국 대형 증권회사에 합병됐다.
따라서 우리.금융개혁'의 목표가 경쟁력 확보라면 빅뱅과 비교해 비슷한데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미국의 글라스.스티걸법이문제되는 것도 이 법이.경쟁력 있는 금융시스템'의 출현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고,일본이 서두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빅뱅은 적어도 세가지 점이 달랐다.첫째,정부가 새로운패러다임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업계는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자율성을 확보하고 있었다.둘째,빅뱅은 증권업에 국한된 악성종양에 대한 외과수술이었다.2백년 가까이 대물림해 온 뉴욕증권거래소의 고정수수료를 하루아침에 폐기한 75년.메이데이'의 영향이컸다.그러나 금융개혁은 얽힌 실타래를 푸는 것과 같다.업무영역조정,경제력 집중은 미국도 해결못한 문제들이다.은행.증권.보험간 상호진출을 허용한 미 ■원의 리치법안은 지난해 본회의 상정도 못 해보고 중도포기했다.
끝으로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진리를 현실로 받아들이는.정서'가 성숙돼 있었다.빅뱅 이후 영국의 머천트뱅크들이 그러했듯 우리의 은행.증권회사가 줄줄이 외국금융기관에 흡수되더라도 최선의 가격과 적정 유동성이 보장되면 그만이라고 말할 준비가 돼 있는가.비전과 아픔 없이 금융개혁은 불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권성철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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