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째 美 경제 이끄는 '물가 파수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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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1년 전 예고했던 대로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에게 4년 임기를 다시 안겼다. 그러나 그가 2008년 6월까지 4년 임기를 다 채울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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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상 FRB 이사 임기가 14년으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12년째 FRB 이사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규정에 따르면 2006년 1월까지만 의장직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대통령이 후임 이사를 지명할 때까지는 이사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그의 임기를 채워주는 방법도 있긴 하다. 그러나 그가 이미 78세로 고령인 데다 후임 이사 지명 연기가 일종의 편법이어서 월가에서는 그의 임기를 2006년 초까지로 보는 이들이 더 많다.

그린스펀 의장은 제럴드 포드 대통령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거쳐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처음으로 FRB 의장에 지명된 이후 지금까지 네명의 대통령을 거쳤다.

FRB 의장으로서 그의 정책수단은 금리 하나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걸 언제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미국 경제는 물론 지구촌 돈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언제 미국 금리가 올라갈 것인가에 월가의 촉각이 곤두서있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유럽의 증시가 요동치는 현상이 그의 영향력을 잘 말해준다.

그린스펀은 92년 대선 전 이라크전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재선이 위태롭던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통화량 확대 요구를 거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93년에는 금리를 인하하라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요청도 못 들은 척했다. 96년 대선 때는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통화량 확대를 요구한 클린턴 대통령에게 경기가 과열된 상황에선 통화량을 늘릴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경제논리에 정치권력이 비집고 들 틈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그의 영향력은 '그린스펀 효과(effect)'란 용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한마디 한마디가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96년 12월 미국 증시가 뜨겁게 달아오르자 그는 "비이성적 활황세"란 한마디로 시장에 찬물을 끼얹으며 투자자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러나 그를 비판하는 소리도 점점 늘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 총재는 재정적자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그는 부시 대통령의 대규모 감세정책에 손을 들어줬다. 또 90년대 후반 정보통신(IT) 붐이 한창일 때 금리인상에 나섰다면 지금의 고통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받는다. 결국 거품 붕괴 이후 미국 경제가 급속도로 가라앉자 2001년 벽두 연 6.5%이던 금리를 마구 떨어뜨리기 시작해 지금은 1%로 58년 이후 가장 낮은 선에 있다.

26년 뉴욕에서 출생한 그는 뉴욕대(NYU) 경제학과를 거쳐 컬럼비아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린스펀은 70세가 되던 97년 12년간 사귀었던 미 NBC방송의 안드레이야 미첼(당시 52세)기자와 결혼하면서 12년 간에 걸친 연애에 종지부를 찍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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