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고장 제철 음식으로 땅도 사람도 건강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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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자기 고장에서 나는 신선한 제 철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자는 게 '슬로푸드(Slow Food)' 운동의 핵심입니다. 정체 불명의 재료로 만든 획일화된 맛의 패스트푸드는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1986년 이탈리아 브라에서 출범한 '슬로푸드 국제본부'의 자코모 모졸리(50) 부회장은 "이 같은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우리 단체는 현재 80개국에 8만명의 회원을 둔 국제적인 네트워크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로마에 미국의 패스트푸드 체인인 맥도널드가 진출한 것에 반대해 시작된 이 단체는 이후 올바른 먹거리를 보존하는 활동으로부터 환경 및 농민 보호 운동, 청소년 교육, 도시 개조 프로젝트까지 영역을 넓혀왔다.

"음식의 질을 높이려니 재료를 산출하는 땅과 농민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죽어가는 토지를 되살리고 농민들이 전통 농법으로 양질의 농산물을 재배하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또한 좋은 재료가 생산돼도 소비자들이 외면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올바른 음식 문화를 배울 수 있게 교육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는 슬로푸드 국제본부가 멕시코의 카카오 재배 농가와 인도의 쌀 경작 농가 등 개도국 농민들을 지원한 것, 산업화 및 세계화 추세에 따라 사라져가던 각국의 전통음식 수백종을 재발굴한 것 등을 대표적인 성과로 꼽았다.

사회 일각에서는 슬로푸드 운동을 '부유층을 위한 사치스러운 놀음'이라고 폄하하는 시각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에 대해 모졸리 부회장은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가난한 농민들이 현명한 생산자가 되도록 가르침으로써 빈곤 퇴치에 일조하고 있다"면서 "소비자 입장에서도 몸에 안 좋은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 것보다 양질의 음식을 적게 먹는 편이 좋다"고 답변했다.

밀라노대에서 철학과 미학을 전공한 뒤 여러 음식문화 관련 잡지에서 일하다 15년 전 슬로푸드 국제본부에 합류한 모졸리 부회장은 슬로푸드 한국위원회(www.slowfoodkorea.org) 초청으로 19일 처음 한국을 찾았다. 그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한국은 음식문화도 뛰어나다고 들었으나 아직 접해본 적은 없다"고 했다. 한국위원회는 제주 방문 때 자리회.톳나물.매실장아찌 등 '한국식 슬로푸드'를 선보일 계획이다.

"17년째 독신으로 지내고 있지만 한번도 끼니를 패스트푸드로 때운 적이 없다"는 모졸리 부회장은 "한국에서 좋은 음식 재료를 많이 사가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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