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진 독일영화 정말 달라졌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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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년 만에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독일 영화 ‘교육자들’의 주연인 다니엘 브루에흘(左)과 제시카 슈바르츠. [AP]

▶ 태국영화 ‘트로피칼 말라디’의 감독 위라세타쿨(右)과 주연 카에부아디. [AP]

11년 만에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독일영화가 호평받고 있다. 국내에도 개봉한 '굿바이 레닌'의 배우 다니엘 브루에흘이 주연을 맡은 영화'교육자들(The Educators)'은 부패한 자본주의에 대한 혁명을 꿈꾸는 요즘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물론 이들의 행동이 대단한 건 아니다. 두 남자 주인공은 사설경비 업체에서 일했던 솜씨를 살려 고급 주택에 침입, 비싼 가재도구를 이리저리 재배치해 놓고는 "당신은 돈이 너무 많다" "풍요롭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같은 말이 적힌 종이 쪽지를 두고 나오는 데서 성취감을 느낀다. 이런 '교육자'를 자처하는 두 남자의 비밀이 그 중 한사람의 여자친구에게 우연히 공개되고, 이 여자친구의 우발적인 행동 때문에 세 사람은 50대 중년 남자를 납치하게 된다.

영화의 재미는 여기서부터다. 보수적인 중산층으로 보이는 이 중년 남자는 실은 1960년대 학생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임이 드러난다. 중년 남자는 아버지가 했던 말이라며 "서른 살 이전에 자유주의자가 아니라면 가슴이 없는 것이고, 서른을 넘어서도 자유주의자라면 머리가 없는 것"이라는 낯익은 구절을 내뱉으며 납치범들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렇게 납치된 사람과 납치한 사람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는 한편 세 납치범 사이에는 애정의 삼각관계로 갈등이 빚어진다. 영화는 이런 중첩된 갈등 속에서 극단적인 파국을 피하면서도 흥미로운 반전과 독특한 결말로 마무리된다.

올해 34세인 한스 바인가르트너 감독은 두번째 장편인 이 영화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올해 칸의 경우 이탈리아의 파올로 소렌티노('사랑의 결과'), 프랑스의 아네스 자오이('나를 봐요'), 아르헨티나의 루크레시아 마르텔('니나산타') 등 겨우 두번째 영화를 들고 온 감독이 적잖이 눈에 띈다. 그 중에도 바인가르트너는 영화적으로 새로운 기교보다 자기 세대의 목소리를 영화에 담는 데 솜씨를 발휘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바인가르트너는 기자회견에서 "10대 시절 무정부주의자였던 나의 경험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었다"면서 "하지만 그동안 보낸 시간이 있는 만큼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흔한 액션물 대신 정치나 이상에 대한 메시지가 담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면서 "모든 사회가 쇄신을 필요로 한다"고도 했다.

'교육자들'같은 영화의 등장을 영화제 현지 언론에서는 독일영화가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는 움직임으로 풀이하고 있다. 파스빈더나 빔 벤더스처럼 거물로 치부되는 감독들 이후로 이렇다 할 차세대 주자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독일영화는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18년 만에 황금곰상을 받았는가 하면, '굿바이 레닌'같은 세계적인 흥행작도 내놓았다.

이처럼 젊은 감독들을 통해 세계 곳곳의 영화적 활력을 소개하려는 올해 칸 영화제의 시도는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역시 34세인 태국 감독 아피차퐁 위라세타쿨은 2년 전 '주목할 만한 시선'을 찾은 데 이어 올해는 '트로피칼 말라디'로 경쟁부문에 입성했다. 이 영화는 두 남자의 사랑 얘기와 태국의 민담을 결합해 이해가 쉽지만은 않은 매우 독창적인 스타일을 선보인다.

태국영화가 칸 경쟁 부문에 진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태국은 스릴러물 'DI'나 액션물'옹박'등의 성공과 함께 아시아에서는 한국 다음으로 역동적인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상업영화와 궤를 달리하는 독립영화 '트로피칼 말라디'는 태국영화의 또 다른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칸(프랑스)=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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