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세계 언어 6000여 개 중 90%가 사라질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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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올해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언어의 해’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현재 6000여 언어 가운데 1000명 미만이 사용하는 언어는 23%에 불과하고, 21세기 말 최악의 경우 언어의 90%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전 세계에서 사라져 가는 언어 실태와 보존문제, 표준어와 지역어의 가치 등을 공부해 본다.

강대국들의 지배가 확산되면서 소수민족 언어가 사멸 위기에 놓여 있다. 21세기말 세계 언어의 90%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사진은 아프리카 소수 민족의 문화 축제. [중앙포토]


◆표준어와 사투리 공방=언어가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주고받기 위한 의사소통의 효과적인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공통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언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며 지역과 사회계층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드러낸다. 언어가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면 의사소통의 도구로 기능할 수 없다. 그래서 어느 하나를 기준 삼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표준어다. 언어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형성한다. 그래서 같은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같은 말에 이끌려 공통된 생각을 갖게 되고 고유한 문화를 이끈다. 같은 지역에서 쓰이는 사투리도 그들 생활의 오랜 경험과 지혜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표준어와 사투리 둘 다 가치 있는 말이다. 그런데 표준어의 가치만 앞세워 보급한 결과 사투리가 점차 사라질 위기에 놓였고, 반대로 사투리의 정서적 가치만 강조한 나머지 표준어를 부정하려는 극단적인 주장도 있다. 모두 옳지 않다. 표준어는 국민의 바른 의사소통을 위해 필요한 도구며, 사투리는 삶의 생생한 모습과 정신이 담긴 문화유산이다.

◆언어의 사멸=강대국들의 지배가 확산되고, 세계화 열풍이 불면서 소수 민족의 언어가 사멸 위기에 놓여 있다. 북아메리카 대륙에는 165개의 토박이말이 쓰이는데, 이 가운데 74개는 몇몇 노인만 사용해 거의 절멸 상태에 있고, 58개 언어는 1000명 미만이 사용하고 있다. 중남아메리카의 경우 400여 언어 가운데 27%인 110개 언어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그 가운데 코아이어는 지금 한 가정만 사용하고 있으며, 멕시코에 있는 올루테코어는 10여 명의 노인만 사용하고 있다. 오세아니아주에선 1년에 언어가 하나씩 사라진다. 우리말과 이웃하고 있는 만주어도 10명 미만의 노인만 쓰고 있어 당장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한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언어에 반영된 문화와 정신, 인류의 소중한 자산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언어, 왜 보존해야 하나=언어를 보존한다는 것은 이들 언어를 되살려 직접 쓰도록 하거나 적어도 문서나 음성, 영상으로 영원히 남기는 것이다. 최근 여러 나라의 정부기관이나 연구기관에서 사라져 가는 언어를 보전하는 것도 사멸 위기의 언어를 보존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언어에는 민족이 수세기 동안 쌓은 자연과 사회에 대한 풍부한 정보가 담겨 있다. 따라서 언어의 보존은 곧 인류의 다양한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것과 같다. 북극의 이누이트족은 최악의 기후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이를 언어에 반영해 얼음과 눈에 대한 다양한 명칭을 만들었다. 아메리카대륙의 미크맥어는 가을에 부는 바람소리에 따라 나무에 다양한 이름을 붙였고, 체로키어에는 씻는 행위에 대한 단어가 무려 14가지가 있다. 디르발어에는 뱀장어 명칭이 수십 가지다.

◆세계 10대 국제공용어 우리말 보존해야=우리말은 단일언어지만 몇 개의 큰 방언권, 즉 서울말을 포함한 중부방언·동북방언·서북방언·동남방언·서남방언·제주방언으로 나뉜다.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면서 이 가운데 서울말을 표준어로 삼았다. 지역적으로 어느 하나를 표준으로 삼는다면 그 나라의 문화·정치·사회의 중심지를 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말은 사용인구로 보면 세계 12위권에 든다. 그뿐 아니라 국제기구의 공용어로도 인정받아 세계지적재산권기구가 정한 10대 공용어에도 속한다. 또 세계인들의 우리말 학습열은 대단하다. 이처럼 우리말은 세계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세계에서 10억 명 이상이 사용하는 중국어를 비롯해 온 세계의 공용어라 할 정도인 영어 열풍 속에 우리말이 위기에 처해 있다. 표준어로서 우리말을 지켜야 함은 물론 삶의 터전이 되어온 사투리가 사라지지 않도록 관심을 갖고 지키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권재일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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