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이라크 차출] 미국 측 전문가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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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일부를 빼내 이라크에 배치키로 한 미 부시 행정부의 결정이 향후 한.미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워싱턴 한국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워낙 절박해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며 이로 인해 한.미관계 자체가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한.미동맹은 앞으로 상당 부분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반론도 있다.

◇돈 오버도퍼(존스 홉킨스대 국제대학원 교수)=주한미군 부분 철수는 정치와는 상관없는 군사적 결정이다. 양국 정부는 북핵 사태를 제외한 나머지 문제들에서는 현재까지 큰 갈등을 드러내지 않았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처한 어려움 때문에 주한 미군을 움직이게 됐을 뿐이다.

물론 주한미군을 한강 이남으로 옮기는 문제조차 한.미 간에 쉽게 합의하지 못하는 지경이니 이번 철수가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철수 결정 과정에서 한.미 양국 정부가 얼마나 긴밀하게 협조했느냐다. 만일 이번 철수가 미국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라 이뤄졌다면 문제다. 한.미관계가 원활치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발비나 황(헤리티지 재단 연구원)=이라크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기 때문에 부시 행정부로선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철수하는 주한미군 3600명은 적잖은 병력이지만 미국이 한국을 방위하겠다는 의지만 확고하면 그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또 과거 닉슨 대통령이나 지미 카터 대통령 당시 철군 논의가 나왔을 때도 한국은 나름대로 대응 방법을 찾아나갔다.

◇한국에서 근무했던 현역 미군 대령(익명 요구)=미국은 한국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주한미군 차출 방침을 정했다. 동맹의 올바른 태도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결정을 내리면서 부시 행정부가 부담을 느낀 것 같지도 않다. 한국민이 북한보다 미국을 더 위협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미국은 큰 충격을 받았고, 실망하고 있다. 한국 내 일부가 지속적으로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반도는 이라크 못지않게 미국에 중요하다. 따라서 미국이 한반도를 쉽게 포기할 순 없다. 주한미군 지상군 일부를 철수하는 대신 미국은 패트리엇 미사일이나 공군력의 추가 배치 등을 통해 전쟁 억지력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한국 내에서 또 다른 반미 감정이 발생할 수 있다. 북한은 이 같은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 선전 공세를 강화하고, 동시에 군사적인 긴장 국면을 수시로 조성해 한국 경제에 타격을 주려 할 가능성이 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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