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회장 물려주고 새출발 한라그룹 정인영 명예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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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재계의 부도옹(不倒翁)',.오뚝이 기업인'.이제는 자신의 이름만큼이나 널리 알려진 한라그룹 정인영(鄭仁永)회장의 이같은별칭에는 유난히 많은 굴곡을 겪으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이겨낸 그의 인생이 담겨있다.사업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열정을 보여주었던 그가 일선에서 한걸음 물러나.명예회장'으로서 97년을 맞는다.鄭회장은 자신이 일궈놓았던 기업을 빼앗기고 뇌졸중으로 쓰러지는등 숱한 좌절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사업을 계속하며 많은이야기를 남겼다.“다시 젊어져도 사 업을 하겠다”고도 했다.회장 자격으로 보낸 마지막 해,마지막 날인 지난해 12월31일 본지 박병석 경제2부장이 남한산성이 멀리 내다보이는 서울 잠실의 鄭회장 접견실을 찾았다.鄭회장은 3일 정몽원(鄭夢元)부회장에게 회장직을 공식적으로 물려준다.
[편집자註]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시고 좋은 일 많이 생기기바랍니다.
“저는 건강이 아주 기본입니다.나이(鄭회장은 96년에 희수(77세)를 맞았다)가 많지만 술.담배를 안해.기관'이 좋답니다.7년전 뇌졸중이 와 UCLA 부속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주치의가 정밀검사하더니.엔진'(심장을 뜻함)이 좋고 깨끗 하다고 했습니다.기본 건강이 좋으니까 새해에 좀 쉬면서 치료하면 몸이 훨씬 좋아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왕성한 경영활동을 하다 갑자기 물려줄 결심을 하셨는데.
“보다시피 저는 휠체어를 타고 다닙니다.나이가 들었고 힘도 듭니다.정몽원 부회장이 친화력이 있고 적극적인데다 본인도 열심히 하길래 최근 2년간 많은 일을 맡겼습니다.힘들고,때도 됐고적임자도 있길래 넘긴 것입니다.” -회장 자리를 넘겨주지만 그룹운영위원회를 주재하는등 큰 일은 계속 챙길 것이라고 했는데.
“신규사업이나 큰 프로젝트는 계속 챙길 것입니다.” -최근 해외출장중 제철사업에 참여할 뜻도 비췄는데.
“조선소를 운영하는데 철강이 부족합니다.배정받기도 어렵고 수입도 어려워 애를 많이 먹습니다.그래서 자체적으로 철판을 만들려고 합니다.부지는 전남의 해안지역으로 예정하고 있습니다.” -장남이 아닌 둘째 아들을 택하게 된데는 특별한 배경이 있습니까. “큰 아이(정몽국 부회장)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있습니다.MBA마치고 15년간 쉬다가 공부를 계속하게 된거죠.
공백을 극복하기 어렵겠지만 꾸준한 성격이니까 잘 할 거예요.”-정몽원부회장을 경영인으로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조직장악력이 있고 인간관계가 좋습니다.사람을 포용하는 힘이있어요.포용력은 특히 경영에 중요한 요소죠.4~5년 시켜보니 능력있고 일도 잘 해요.미래 예측도 곧잘 하고요.” -매년 2백일 이상 해외출장을 다녀왔는데,그렇게 많이 다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년동안 그랬습니다.사업을 하려면 가서 직접 면담해야 당사자의 표정을 보면서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또는 얼마나 거부감을 갖고 있는지 알수 있습니다.가만히 앉아 전화하거나 팩스통신하면 전혀 알수 없습니다.” -뒤돌아보면 고비와 결단의 순간이 두차례 있었던 것같은데요.신군부 세력에 의해 창원공장을 빼앗긴게 첫번째지요.
“그렇습니다.창원공장을 강제로 빼앗겼죠.당시에는 하늘도 노랬고,세상이 다 달라 보였습니다.다시 일어나고야 말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또 한번의 시련이 89년 7월에 있었죠.아픈 기억이지만.
“89년 7월 아침에 일어나다가 쓰러졌습니다.못 일어나겠더군요.이런 절망이 또 있을까 싶었어요.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다시일어나야겠다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올해(96년) 한국경영학회로부터 .경영자 대상'을 수상했을때 수상이유중 비자금사건에 연루되지 않은 깨끗한 기업인이란 점이 고려됐다고 들었습니다.한국에서 기업하려면 정권과 가까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그러나 나는 그렇지 못했어요.5공때 현대양행 빼앗기고 세무조사가 들어오고,또 현대양행 경영당시 부정이 많았다고 재판받기도 했지요.법정구속설도 있었고 정말이지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그때는 줄 돈도 없었고 줄 분위기도 아니 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내가 돈을 준들 받았겠습니까.” -비자금사건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회장들이 검찰에 불려가는 것을 TV로 보면서 나는 하느님이도왔다고 생각했습니다.나를 저기서 빼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화가 복이 됐습니다.” -기업과 정치의 관계가 어떠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정치와 돈의 관계인데…,불가불 따라다니는 거죠.그러나 기업도,정치도 깨끗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인간인 이상 그러하기 힘든 면이 있겠지만.” -기업인으로서 스스로를 평가한다면.
“저는 인생을 못나게 살았다고 생각합니다.술.담배를 안하니 남처럼 기분도 못내보고….그런 엑사이트한 순간이 없었습니다.”-많은 사람들이 鄭회장은 바르고 모범적으로 살았다고 생각하는데자신은 어떻게 평가합니까.
“뭐든지 하면 열심히 하는 스타일입니다.금년에도 할수 있는 데까지 했다고 생각합니다.오늘 마지막날 흐뭇합니다.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젊어져도 사업을 하겠습니까.
“다시 하면 멋지게 하겠습니다.” <정리=박경덕.사진=장문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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