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커스터 美 불교經典學교수와 眞際선사의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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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광릉에 있는 봉선사(奉先寺) 혜묵(慧默)스님이 내게 전화를 주었다.미국 캘리포니아대(버클리)의 불교 경전학 교수 루이스 랭커스터가 한국에 왔는데,해운정사(海雲精舍)의 금모선원(金毛禪院) 조실 진제(眞際)선사를 만나러 부산엘 간다는 것이었다.나보고 동행을 권했다.
겨울바다도 보고 싶고,진제선사도 보고 싶던 참이었다.겨울바다나 진제스님은 둘 다 도력(道力)이 뛰어난 존재다.이 둘은 보기만 해도 기독교 식으로 말해 은혜를 받고,불교식으로 말하면 공덕(功德)을 입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피곤 .외로움.지저분함… 이런 기분에서 잠시나마 완전히 해방된 느낌을 절실하게원하고 있던 때에 그 전화를 받았다.
이런 전화를 혜묵스님이 걸 것이라고 미리 전해준 사람은 역시봉선사에서 수도하는 명고(鳴鼓)스님이다.이야기가 이렇게 되었으니 내가 명고를 알게 된 이야기부터 해야만 할 것 같다.
돈화문(敦化門)앞 사주(四柱) 보는 역문관(易門關)으로 관주(關主)를 찾아 보러 들렀다가 나는 거기서 수필가 맹란자(孟蘭子)씨를 소개받았다.그의 수필집.빈 배에 가득한 달빛'의 제5장.주역 산책'에 있는 글들에는 호기심.슬픔.묵향 (墨香)이 수런수런 배어 있다.
나는 그 때 중앙일보에 매주 인터뷰 기사를 하나씩 싣고 있었다.그 날 역문관에서 맹란자씨는 초파일과 부처님 열반제일 사이의 어느 날을 잡아서 봉선사 월운(月雲)스님을 인터뷰할 기회를마련해 보겠다며 친절하게 그 주선을 맡아 주었다 .월운스님은 당대 우리나라 경학(經學)의 최고봉 학승(學僧)으로 동국대 역경원장이기도 하다.
월운스님을 회견하려고 봉선사 갔던 날 맹란자씨는 월운의 상좌인 명고를 내게 소개해 주었다.그런데 맹란자씨는 명고스님의 고등학교적 국어선생이고 담임선생이었다는 것이었다.孟교사의 국어 시간은 한문 가르치는데 중점을 두었다.
명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庸)씨가 맹란자씨의 여고시절 국어교사였다고 한다.김구용씨는 글씨 잘 쓰고 글 잘하기로 이름 높은 시인이다.특히 그가 편저(編著)한.열국지(列國志)'는 한자 고사성어(故事成語)의 인삼밭 아닌가■김구용씨는 그 시 절 한시(漢詩)외우는 것을 국어점수에 첫째로 반영했다고 한다.맹란자씨의한시 외우는 실력은 그때 김구용씨의 가르침 덕이라고 했다.
명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절에 행자(行者)로 들어갔다가 다시 환속했다.맹란자씨에게 배운 탄탄한 한문 실력과 타고난 미술재능을 살려 인사동(仁寺洞)에다 전각방(篆刻房)을 차렸다.그 옥호(屋號)를 역문관 주인에게 지어달라고 부탁했 다.
.무명고(無鳴鼓)'라는 몹시 허무주의적 이름을 얻었다.
스승인 월운스님은 이 내력을 알고는 이 30대 중반의 상좌에게 .명고'라는 뜻밖(意外)을 찌른 법명을 주었다.
처음 인사를 나눈지 석달쯤 뒤에 난데없이 명고스님이 팔공산(八公山) 동화사(桐華寺)로부터 장거리 전화를 내게 걸었다.자 기는 그 절의 금당(金堂)이란 선원(禪院)에서 하안거(夏安居)참선(參禪) 공부중인데 그 선원의 조실 진제스님을 인터뷰하러 한번 대구로 내려와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해 한국 당대의 아난(阿難)인 월운과 가섭(迦葉)인 진제 두 분 큰스님을 만났다(한국에 다른 가섭과 다른 아난이 더 많이 있더라도 내 이 표현을 용서해 주기 바랄뿐이다).
진제스님은 부산 해운정사 금모선원과 대구 동화사 금당선원 이두 선방의 조실을 겸임하고 있다.
수인사를 건넨 후 나는 랭커스터 교수에게 그가 불교신자인지 물어보았다.나 자신은 아직 불교도가 아님을 덧붙였다.랭커스터 교수는 45년동안 불교만 연구해오고 있는 것을 보면 자신을 불교도라고 해야 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이것 봐라샤 싶었다.몹시불교적이고 학자적이고 서양적인 대답이라고 생각했다.랭커스터 교수는 미국사람 아난존자인 셈이다.
나는 월운스님이 번역한 금강경을 늘 가방 속에 넣고 다닌다.
금강경 역시 아난존자의 그 특출한 기억력을 바탕으로 부처님 사후(死後)에 마련됐다.말머리는 언제나.이와 같이 나는 들었어요(如是我聞)'라고 시작함으로써 아난은 지금 사람들 에게까지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 열반 후 그의 자리를 이은 것은.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微笑)'선법을 스승과 문답한 참선 제일 가섭존자였다.이런가섭의 인증(認證)을 얻어 그 다음 대를 이은 것은 바로 경문(經文) 제일 아난존자였다.경(經)과 선(禪), 문자(文字)와불립문자(不立文字)는 역시 본래 둘이 아니라 하나인가 보다.
혜묵스님의 설명에 의하면 랭커스터 교수는 산스크리트.팔리.티베트.한문,이 네 가지 언어의 불교 경전을 대비한 방대한 색인을 저작하였다고 한다.쉽게 말하면 이 네 나라 말 팔만대장경을전부 비교한 것이다.놀랍다.랭커스터 교수는 이 큰 프로젝트를 수행하느라고 한국에도 여러 차례 와서 묵었다는 것이다.
“저 양반,우리나라 스님들 푸대접과 눈칫밥 설움깨나 겪었지요”라고 혜묵은 말한다.승속(僧俗)을 막론하고 지금 우리나라 불교계는 글이 귀하다고 한다.뿐만 아니라 한국 불교의 전통은 글을 무시하고 선에 치중한다.그래서 글을 찾아다니는, 불교도일 수 없을 것 같은 외양을 가진 이 푸른 눈의 학자는 한국 절로부터 푸대접을 받았을 것이다.선만이 부처의 옳은 법맥일는지 모른다.그러나 글을 홀대하면 자칫 참선 수행도,청정 계율도 멀리한 채 오직 기복(祈福)에 빠질 염려가 있다.
랭커스터는 소속으로 보면 그 대학교의 동아시아 언어과 교수다.그는 박사 학위 과정에서는 여섯명을 맡아 불교 경전을 강의하고 있다.혜묵스님은 캘리포니아대에 머물면서 랭커스터 교수와 불교 경전 전산화 작업을 시작했는데 이 사업은 오늘 날 불교 경전을 가진 세계 각국 학자승려의 공동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재미 있는 것은 경전(經典)의 사람 랭커스터 교수가 참선의 도인 진제스님을 이번에 방문하게 된 실마리다.이 불전(佛典)전산화 작업은 전산부호를 위시하여 각국의 연구 작업을 공통적으로사용하는 것이 불가결하다.이를 위해 뉴스레터를 발간하여 서로 소식을 전해야 하겠는데 거기에 들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혜묵스님이 애를 쓰고 있었다.명고 스님이 이를 알고 그의 참선 스승인 진제 선사에게 도와달라고 청했다고 한다.
랭커스터 교수가 진제선사에게 던진 선문답은 이 뉴스레터 발간불사(佛事)에 진제스님이 돈을 도와주어 고맙다고 말하는 것으로들리기보다 무슨 일인가를 심각하게 따지는 것 같은 내용으로 시작되었다.
“스님께는 선만 중하고 글은 하찮은 것인데 어떻게 불전 전산화 사업에 쓰라고 우리에게 거금을 주실 생각을 했습니까.” 진제의 대답은 여기서도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았다.
“한국 불교를 세계에 알리는 기회로 삼으려고 그렇게 했습니다.” 역시 진제 대선사는 경전,더구나 전산화된 경전 자체는 안중에도 둔 바 없었던 것이었구나.진제는 오늘날 온 세계에서 부처님으로부터 면면히 전해 내려오는 올바른 심인법(心 印法)이 계승된 것은 한국의 선(禪)불교밖에 없다고 여기고 있다.광대무변한 불법을 스승 없이 배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진제 선사의 불법 전파에 대한 견해다.
“부처님은 49년 동안 8만4천 법어를 전했습니다.그런데 이수많은 법어를 부처님 당신이 열반을 바로 앞두고 전부 도로 거두어들이셨습니다.8만 법어가 한번의 열반과 같지 못 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지요.문수보살이 말했습니다.이 8만4 천 법어는 모두 깨달음이 아닌 깨달음의 방편에 불과하다고.그건 지금도 그렇지만 그러나 방편임에는 틀림 없지요.” 진제스님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경전 전산화 불사가 한국의 돈오돈수(頓悟頓修) 화두(話頭) 참구(參究) 수련법을 세계에 전하는 방편이 될 수 있음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랭커스터 교수가 돈오돈수를 물었다.
진제선사가 대답한다.“화두 참구 용맹정진은 순금을 정련(精鍊)하는 일입니다.
순금이 다 되는 순간이 돈오지요.순금이 된 것을 더 닦을 이유가 없습니다.그대로 두기만 하면 됩니다.그러므로 점수(漸 修)란건 말이 안되고 돈수(頓修)일 수밖에 없지요.” 나는 이 말이 새롭게 들렸다.
그래서 서울로 돌아오는 도중에 혜묵스님에게 물어보았다.
세계 불교에서 돈오돈수.돈오점수 문제는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고.그리고 돈오돈수에 대한 진제선사의 그날 설명을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혜묵의 대답은 담담했다.
“세계 불교에서 돈오돈수 문제는 옛날의 한 일화 정도에 불과하지요.그런데 순금에 대한 비교는 처음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홍인대사의 제자 육조 혜능대사와 다른 제자 신수대사 사이의 후에 돈오돈수 논쟁으로 이름이 붙게 되는 견해 차이는 한국 불교의 홀마크일 수밖에 없겠다.진제 큰스님은 한국 불교의견처(見處)인 돈오돈수 정법(正法)을 이래서 세계불교에 가르치려 하는 것인가 보다.
금모(金毛)란 사자의 털이다.사자는 다름 아닌 석가모니의 별칭이다.이 곳 금모선원에는 이 겨울 30여명의 납자(衲子)와 70여명의 재가불자들이 동안거에 용맹정진중이라고 한다.이 곳을절터로 잡게 된 내력을 랭커스터 교수가 물었다.
진제선사가 대답한다.
“산승(山僧)이 향곡선사 아래에서 묘관음사(妙觀音寺)에 있던때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산중을 떠나 시변(市邊)참선 도량을 짓고 싶다고 발원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이 뒷산이 꼭 암사자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여기다'하고 마음을 정했지요.암사자는 새끼를 돌보니까 이렇게 참선객들이 많이 이곳에 모이는 모양이지요.” 진제선사는 스님들 사이의 법거량(法擧揚)을 언필칭 법전(法戰)이라고 부를정도로 검(劍)의 달인처럼 차갑고 치열하다.그가 마음을 한풀 푹 낮추어 이 절터의 풍수를 덕담하는 것을 듣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해운정사의 법당인 원통보전 (圓通寶殿)에는 가운데 자리에 석가여래 대신 천수천안관세음보살(千手千眼觀世音菩薩)을 모셨다.해운대 바다 위에서 빛나고 있는 겨울해가 구름이 지나가면평화로운 초록빛 눈썹,익살스런 초록빛 곱슬 콧수염을 가진 이 관세음보살의 볼을 미소 (微笑)와 우수(憂愁)로 천변(千變)케한다.나는 진제.랭커스터, 이 두 도 높은 이들이 나누는 말을들으며 명고스님같은 젊은 구도자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천수천안관세음보살님! 강위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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