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자로가는길>과천 관악산 연주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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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서울에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볼 수 있는 암자가 연주암(戀主庵)이다.관악산 정상아래 있으며 과천향교(果川鄕校)쪽으로가는게 돌계단등이 잘 놓여져 있어 힘이 덜 든다.동짓날 오전이어서 인지 등산객보다 신도로 보이는 사람들이 더 많이 산길을 오르고 있다.
신라 문무왕(文武王)17년(677년) 의상(義湘)대사가 창건했다는 연주암이다.암자가 가까워졌는지 염불소리가 계곡 아래로 메아리쳐 온다.숨도 차고 해 찬 바위에 걸터앉아 귀 기울여보니스피커가 토해내는 녹음된 소리다.수행 도량이니 조용히 참배해 달라는 안내판이 무색하지 않을까 싶다.연등(蓮燈)만한 빈 까치집을 보니 새삼 수행 도량이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헤아려진다.
까치 뿐만 아니라 눈 푸른 수행승들이 깃드는 암자야말로 참 도량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12시가 넘자 천수관음전(千手觀音殿)1층 공양각 입구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다.암자를 찾은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점심을준다고 한다.오늘의 메뉴는 동지죽.어느새 줄은 대웅전 앞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조성했다고 하는 3층 석탑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그네는 동지죽 한 그릇을 비우고 나서 다시 연주대(戀主臺)로 향한다.연주암은 원래 관악사였는데 왕위를 물려받지 못한 태종의 두 왕자,첫째인 양녕대군(讓寧大君)과 둘째인 효령대군의한이 서린 곳이라 하여 이름이 바뀌어졌다고 한다.
전해지는 얘기인즉,조선조 태종 11년 태종으로부터 왕위가 셋째 왕자인 충녕대군(세종)에게 넘어가려 하자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눈물을 머금고 관악산으로 숨어들어 왕궁이 보이는 산정까지올라 자신들의 한을 달랬다는 것이다.아닌게 아니라 연주대에 오르니 왼쪽으로는 서울이,오른쪽으로는 과천 시가지가 훤히 보인다.왕궁을 내려다보며 한을 삭였다는 두 왕자의 이야기가 실감나기도 하고,그런데 연주대에 있는 가람의 이름은 나한을 봉안한 응진전(應眞殿)이다.나한기도가 이태조이 후에 성행했다는 학설이 있고 보면 응진전의 터는 조선 초기부터 닦여졌을 것같다.
응진전은 입구부터 기도객들로 발 디딜 틈 없다.더욱이 입구 바위에는 의사처럼 하얀 가운을 입은 듯한 약사여래가 있는데 어떤 참배객은 벌써 감기가 든 환자가 돼있다.흐르는 콧물을 닦으며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바위에 동전 1백원짜리를 붙이고 난 후 이마를 바위에 대고 기도하는 것도 다른데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이다.바위에 동전을 왜 붙이느냐고 묻자 한 아주머니신도가 이렇게 대답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지 않습니까.약사여래 부처님께 공짜로 빌기미안하니까 동전을 붙인답니다.” 그러나 약사여래는 동전을 헤아리고 있는 모습이 아니다.미소지으며 기도하는 참배객들의 마음을꿰뚫어 보고 있는 얼굴이다.가는 길은 과천쪽이 서울대 쪽 코스보다 더 편하다.과천 향교에서 연주대까지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글 :정찬주(소설가) 사진:김홍희(사진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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