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결산>財界-재벌 총수들 세대교체 잇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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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재계 총수들의 세대교체가 러시를 이뤘다는 점에서 올해는 우리 재계에 한 획을 긋는 해로 기록될 수 있다.
연초 현대그룹이 정세영(鄭世永)회장에서 정몽구(鄭夢九)회장 체제로 바뀐데 이어 한보.삼미.삼환.코오롱.금호.두산.삼양.한라등 많은 그룹에서 총수가 바뀌었다.2,3세 부자간 세대교체도있었지만 이의 중간단계인 형제간 승계도 적지 않 았다.유례없는대규모 총수교체는 대부분 창업 1세대인 총수들의 노령(老齡)과함께 본격화된 세계무역기구(WTO)체제,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등 급변하는 경영여건과 국제화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총수들의 이같은 변화에 이어 12월 뚜껑이 열린 주요그룹 사장단및 임원인사도.사상 최대 승진'이 있었던 지난해와는 완연히달리.철저한 실적위주'.
실제 승진폭도 지난해에 크게 못미쳤다.LG그룹은 몇몇 원로 경영인들을 퇴진시켰고 삼 성도 김광호(金光浩)전자소그룹장등 간판급 경영자들을 해외로 전진배치했다.
…하반기들어 본격화된 감량경영은.고개숙인 남편과 아버지'들을양산하는등 우리사회 전체에 스산한 바람을 확산시켰다.
코오롱이 9월초 사장단회의에서▶내년 임금총액 동결▶사장단연봉제등의 비상경영대책을 시작으로 전경련은 30대그룹 임원 임금 동결및 인건비총액 동결을 결의하는 비장함을 보였다.현 경제상황이 위기적 수준이라는데 대해 수긍하는 여론도 있었 지만 때마침추진된 노동법개정과 맞물려 노동계의 반발등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 반도체수출경기 급락이 신호탄인양 가라앉은 경기로 인해 기업의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됐고 기업마다 강도높은 각종 경비절감책을 시행했다.
…인건비절감.사업구조조정등을 앞세운 대규모 명예퇴직도 대기업에서 잇따라 실시됐다.선경인더스트리가 8월에 부장.과장급 1백4명을 명예퇴직시킨데 이어 9월엔 대리이하 평사원까지 대상폭을넓혀 전직원의 20%가 넘는 8백20명을 명예퇴 직시켰다.
한국유리도 8월 전체 직원의 25%에 이르는 5백여명을 명예퇴직시켰으며,대한항공.코오롱.포스틸등의 대기업은 물론 일부 유수 언론사들도 올해 명예퇴직을 시행했다.그러나 대량감원에 대한우려의 시각이 커지면서 대기업들은.명퇴'보다 지 원부서 인력을영업등 일선으로 보내는.인력재배치'쪽으로 방향을 선회.
…올해는 경기침체가 가속화하는 가운데 경제에 주름살을 잡히게한 악재도 유달리 많았다.
정인영(鄭仁永)한라그룹 회장을 제외한 30대그룹 회장 전원이전직대통령 비자금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소환되는 재계사상 초유의일도 겪었다.이들은 모두 1,2심에서 집행유예 또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1년내내 공판때문에 고통을 겪었고 국내외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올해 활기가 예상됐던 남북경협도 북한의 잠수함 침투사건등으로꽁꽁 얼어붙었다.
의류업체들의 대북한 임가공사업도 대폭 줄었고 남북한 최초의 합영회사를 설립해 직원을 상주시키려던 ㈜대우는 곧바로 이들을 전원 철수시킨채 뒷날을 기약하기도.
…지난해부터 불붙은 기업들의 해외투자붐이 이어지며 제조업공동화에 대한 논란도 크게 일었다.국내 투자환경이 외국에 비해 불리한만큼 세계화를 위해선 해외투자가 불가피하다는 게 기업들의 생각이었지만 국내산업공동화 우려도 확산시켰다.그러 나 하반기들어 기업의 신규투자가 대폭 줄어들며 논란도 수면 아래로 잠복.
…경영환경이 어려운만큼 미래형 신규사업에 진출해 활로를 뚫어보려는 기업들의 경쟁은 그만큼 더 치열했다.
특히 올해 최대이슈였던 개인용휴대통신(PCS)사업권은 치열한경쟁끝에 LG와 한솔등에 넘어갔지만 탈락업체들이 선정과정에서의공정성에 문제를 들어 반발하는등 후유증을 남겼다.
기아자동차는 일본등 선진국 업체들의 견제 속에서도 인도네시아국민차사업을 따내 우리 자동차산업의 위상을 높였다.건설업계의 경우 우성의 부도,건영의 법정관리등 우환이 많았다.주택부문의 극심한 경기침체 속에서도 해외건설은 급신장해 올 해 수주실적이13년만에 1백억달러를 돌파했다.그러나 대우전자가 야심작으로 추진했던 프랑스의 톰슨멀티미디어사 인수는 배순훈(裵洵勳)회장이현지에 상주하다시피하며 노력했으나 무산위기를 맞고 있다.
열띤 수급논쟁 끝에 기정사실화돼 가던 현대의 제철사업도 끝내.불허'로 낙착.기업의 업종참여는 자율에 맡겨야 한다며 당사자인 현대는 크게 반발하고 있어 내년이후 움직임이 주목된다.
…중소기업쪽에서는 올 2월의 중기청 출범을 계기로 활기를 기대했지만 침체된 경기탓인지 정작 중소기업에는 피부에 와닿는 정책지원이 없다는 지적들.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외국인 산업연수생 제도운영상 문제로 구설수에 올랐지만 8월엔 여 의도에 중소기업종합전시장을 설립하는등 나름대로 성과도 올렸다는 자평(自評). <경제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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