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미국 드라마 ‘덱스터’의 한국계 개성파 배우 찰리 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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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할리우드에서 한국계 남자 배우가 살아남기는 거의 불가능해요. 15년간 연기를 공부하고 데뷔했지만 제가 살아남은 것도 거의 기적이죠.”

수만 명의 배우가 경쟁하는 미국 드라마 시장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배우는 10여 명. 미드 ‘덱스터’ ‘로 앤드 오더(Law & Order)’ ‘몽크(the Monk)’ 등에 출연한 C.S.리(찰리 리·37·사진)는 그중에서도 A급으로 꼽힌다. 조연이지만 개성적인 연기로 국내 미드팬들 사이에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 6일 그를 하얏트호텔에서 만났다.

리는 정통 연극파 출신이다. 시애틀에 있는 코니시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예일대 드라마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원 졸업 후에는 8년간 뉴욕 연극 무대에 섰다. 공부 잘하는 아들이 연기의 길을 택하자 부모님의 반대가 거셌다. “대부분의 한인 부모처럼 저희 부모님도 좋은 대학에 대한 욕심이 크셨죠. 어려서 수학을 잘했으니 MIT 같은 명문 공대를 가라고 하셨어요. 대학 졸업 후에도 끝까지 로스쿨이나 의대를 고집하셨고요. 그나마 ‘명문’ 예일대에 들어간 다음 비로소 제 뜻을 받아주신 셈이죠. ”

대학원 졸업 후 그는 뉴욕의 국립아시안아메리칸극단(National Asian American Theater Company) 등에서 활동하며 수백 편의 연극에 출연했다. 그저 연기가 좋다는 이유로 노개런티 출연을 밥 먹듯 했다. 영화 ‘21’에 출연한 한국계 애런 유, 드라마 ‘매드 어바웃 유(Mad About You)’의 스티브 박 등이 당시 함께 연극을 하며 우정을 쌓은 친구들이다.

이처럼 가난한 무명의 연극 배우이던 그에게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이 바로 드라마 ‘로 앤드 오더’다. 법정 드라마인 ‘로 앤드 오더’의 탐정 역할로 비로소 연예계에 이름을 알렸다.

“사실 ‘로 앤드 오더’는 뉴욕의 배우들에게 기회를 주는 작품이에요. 19년간 시즌을 거듭하면서 뉴욕의 실력파 연극배우들이 한번씩 자기를 알리는 장으로 삼았거든요. 여기서 이름을 얻고 다른 드라마나 영화 쪽으로 옮겨가는, 일종의 ‘TV 등단’ 개념이죠.”

범죄 스릴러 ‘덱스터’에서 그는 덱스터의 동료 법의학자로, 여자들을 괴롭히고 야한 농담을 즐기는 악동 빈스로 출연한다. “빈스는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의 ‘덱스터’에서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가끔씩 농담을 던지는 감초 같은 사람입니다. 물론 실제의 제 모습과는 매우 다릅니다(웃음).”덱스터는 현재 케이블 FOX 채널에서 시즌2가 방영되고 있으며 내년 1월 시즌3이 방영된다.

네 살 때 미국 이민을 떠나 한국어가 능숙하지는 않지만 노래방 18번은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 ‘사랑했어요’ 같은 한국 가요다. 한국 영화 중에는 ‘올드보이’‘오아시스’를 가장 감명 깊게 봤다고 했다.

미드의 개성파 조연으로 자리를 굳혀 가고 있는 그의 궁극적인 꿈은 영화감독이다. ‘크럼플(Crumple, 2004)’ 등 2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한 바 있는 그는 “기회가 된다면 동양계 미국인의 정체성 혼란을 다룬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글=이현택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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