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씨,최규하씨 하야前 집권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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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은“집권의도가 없었다”는 법정 진술과 달리 당시 최규하(崔圭夏)대통령이 하야하기 훨씬 전인 80년 6월부터 권정달.이종찬.이상연.이상재씨등 측근들을 보안사령관실로 불러.신당 창당작업에 착수하라'는 지시를 내리 는등 사실상집권준비를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관계기사 4면> 이 지시에 따라 권정달씨등은 그해 7월초 보안사 건물옆 별채 빌딩(존안실)2층에 사무실을 차리고 신당 참여인사 인선작업에 착수했으며 이상연씨는 구정치인과 언론계 인사들을,윤석순씨는 학계인사들을 중심으로 선별했다는 것이다.
全씨는 또 그해 7월부터 박철언.우병규씨등 국보위 법사위원들을 동원해 보안사내에서 헌법개정 작업을 시켰으며 8월 중순에는권정달.박철언씨등을 보안사령관실로 불러“개정헌법에는 대통령 간선제와 임기 7년을 못박아 달라”고 주문까지 했 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검찰.12.12및 5.18사건 수사본부'가 펴낸 이 사건 참고인등 관련자 진술내용 책자에서 밝혀졌다.
이 책자에 따르면 최규하 전대통령이 80년 8월 대통령직을 사임한 배경에는 전두환씨측의 밀사였던 김정렬(金貞烈.작고)씨의집요한 권유가 크게 주효했던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국무총리였던 신현확(申鉉碻)씨는 지난해 12월16일의 검찰조사에서“81년 가을 김정렬씨로부터 직접 자신이 崔대통령의하야를 적극 권유한 사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김종환(金鍾煥)전내무장관도 80년 8월초 유학성 (兪學聖)씨로부터“崔대통령은 김정렬씨가 맡아서 하고 있는데 곧 하야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또 당시 崔대통령 비서실장이던 최광수(崔侊洙)씨는 지난해 12월19일의 검찰조사에서“12.12이후 대통령 주관으로 일을 추진한 것은 거의 없다.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계엄사령관.국방장관등 소위 신군부 실세에의해 모든 정책이 추진돼 崔대통령이 상당히 무력감을 느꼈다”며崔전대통령이 12.12사태 이후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일을 추진하거나 지시한 사실이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한편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는 이학봉(李鶴捧)당시 보안사 대공처장이 피고인들 형량결정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충우 보안사 대공처장 진술에 따르면 李씨는 청와대로 자리를옮긴 후에도 수감자및 재판부 동향등을 일일이 챙기는 한편 육본보통군법회의 검찰부에 파견나가 있던 보안사 수사관에게 피고인별로 형량을 결정해 통보하면 수사관이 재판부에 형량을 그대로 전달해 선고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신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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