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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따뜻하게 명령하는 여인.그 따뜻함에 한가닥 에로티시즘이 있고,그 명령에 일관된 생활관이 있는 여인.
그같은 연상의 여인에게 남성은 끌린다.요컨대.어머니'를 느끼게 하는 여성이다.특히 젊은 날의 어머니에 대해 소년이 품은 애정을 떠올리게 하는 여인이라고나 할까.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 주몽(朱蒙)이 한참이나 연상인 소서노여대왕에게 품은 정도 그런 것이었을 수 있다.
흔히들 이 한쌍의 맺어짐을.정략결혼'으로 본다.
.소서노여대왕의 수수께끼'를 쓴 고교수는 그같은 측면이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주몽은 소서노를 사랑했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소서노 또한 주몽을 열애(熱愛)했다 한다.
.삼국사기'백제본기 온조왕조 단서(但書)의 행간에서 그 사실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 대왕이 북부여(北扶餘)로부터 난을 피하여 이곳에 도망하여 오자 우리 어머니께서 가재(家財)를 기울여 도와 방업(邦業)을 이룩해 그 근로(勤勞)가 많았다….” 소서노의 큰아들비류(沸流)는 이렇게 푸념하고 있다.푸념도 할만한 상황이었다.
북부여에서 핍박을 받고 졸본부여(卒本扶餘)로 도망쳐온 청년 주몽에게 소서노는.제2의 인생'을 걸었다.자신의 재산과 세력.
지략을 다 기울여.고구려'라는 새 나라를 세워 손아래 남편으로하여금 왕이 되게 했다.
주몽의 자질이 뛰어났던 것은 사실이고 고구려 건국에 그가 일조(一助)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소서노의 힘이 아니었던들 창업은불가능했다..시조(始祖)'자리는 당연히 그녀에게 돌아갈 참이었다. .여성숭배'.국모(國母)신앙'이 팽배했던 기원전의 상고(上古)땐 여왕 추대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그러나 소서노는 주몽에게 국왕의 영광을 누리게 했다.여기서 소서노의 도량과사랑을 느끼게 된다.
을희는 손아래 남성에게 끌리는 편이 아니다.을희 마음속의.남자'란 개념엔.보호자'의 이미지가 짙기 때문이다.
보호자는 연장자.경험자.강자를 의미했다.나이든,경험이든,지식이든, 사회적 지위든 여자보다 위에 가는 존재라야 비로소.남자'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가부장(家父長)제도 아래서 빚어진선입견인지 모른다.을희의 이같은 성향과는 달리 많은 손아래 남자들이 그녀를 따랐다.
자궁(子宮)의 문을 닫고 20여년이나 살아온 을희에겐 억제된요염함이 있었다.성적인 충동을 자제하며 지내는 여인에게서 풍기는 절제된 요기(妖氣).그것이 수절(守節)하는 어머니를 보듯 연하의 남자를 끌어들이는가.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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