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선택 릴레이 인터뷰 ④ 이채진 클레어몬트대 국제전략연구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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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부근 클레어몬트 매케나 대학의 이채진(72·사진) 국제전략문제연구소장은 7일 “오바마 당선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 경제라서 당분간은 과감한 아시아 정책 변화를 시도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아시아 정책은 국무부·국방부의 수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방향이 크게 달라지지만, 현재의 금융위기 때문에 최소 6개월에서 1년 동안은 크게 변화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오바마나 민주당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만큼 중국·러시아·일본과의 관계에 새로운 긴장감이 생길 수는 있다”고 밝혔다.

-오바마 정권서 바뀔 아시아 정책은.

“아무래도 일본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동북아 정책에서 일본을 우선시해 왔다. 부시 대통령도 개인적인 친분 관계를 정치에 내세울 정도였다. 하지만 현재 일본은 새 총리가 부임한 후 민족주의와 보수주의로 점차 변하고 있다. 따라서 오바마 정권이 일본의 민족주의를 잘 다루지 않을 경우 좋지 않은 변화가 생길 수 있다. 특히 오바마 정권이 일본 정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납치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으면서, 북핵 문제에 접근하는 등 유화적인 자세를 취할 경우 두 나라 사이의 긴장감이 커질 것이다.”

-중국과의 관계도 변화가 예상되나.

“중국과의 관계는 보다 유연해질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 초기 중국의 인권 문제 등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중국의 확대되는 경제력과 정치·군사적인 부상은 부시 대통령의 베이징 올림픽 참석으로 이어지는 등 전략적인 관계 발전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오바마 행정부도 미 경제를 살리기 위해 중국과의 협력 관계를 강화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티베트와 인권문제를 개선하지 않거나 그럴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민주당 주도의 의회가 나설 수 있다.”

-의회가 나서는 이유는.

“무엇보다 낸시 펠로시 의장이 달라이 라마를 직접 만났을 만큼 중국의 인권과 티베트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로 연방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은 직접 나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오바마 당선인은 러시아와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그렇다 해도 러시아가 그루지야를 침공하거나 우크라이나에 대해 군사 압력 등의 행동을 취할 때는 오바마도 강력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당은 온화하고 현실적인 정책을 갖고 대응하는 것이 장점이지만 전략적 관계를 잘 이용하기도 한다.”

-한반도 정책에 대한 변화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협력적으로 발전할 경우 북핵문제나 6자회담에 대한 중국의 입김이 커질 것이다. 취임 초기 강경 노선을 쓰던 부시 행정부가 2007~2008년 2년 동안은 현실적이고 유화적인 정책을 취해왔다. 따라서 오바마 행정부도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유지할 수 있다. 오바마는 대선 캠페인 기간에 북한과 직접 만날 의향이 있다고 했다. 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6자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와 북·미 양자회담으로 관계 개선을 협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결국 한·미 관계가 어느 정도 강화되느냐에 맞춰 남북한 관계와 북핵 문제가 조율될 것이다.”

-오바마는 하와이와 인도네시아에서 살았던 경험을 공공연히 말해왔다. 그런 경험이 아시아나 대북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그건 개인적인 경험일 뿐이다. 대통령으로서 정책을 세우거나 정견을 넓히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다민족을 이해하고 그 배경에 적응하는 데 도움은 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김정일을 싫어한다고 공공연히 밝혀왔고, 그의 개인적인 생각이 취임 후 대북정책을 강경 노선으로 바꿨다.”  

LA지사=장연화 기자

◆이채진=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UCLA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클레어몬트 매케나대 국제정치학 석좌교수와 이 대학 국제전략문제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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