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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기쁨 <87>양조 명가를 덮친 위험한 스캔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7호 30면

2008년 4월 초 보도된 두 건의 이탈리아 와인 사건에 적지 않게 놀랐다. 하나는 풀리아주와 베네토주에 사는 가정용 저가 와인 생산자들이 와인의 양을 늘리기 위해 위험한 약물을 탄 물을 첨가했다는 것. 또 하나는 이탈리아 최고의 와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 2003년산’에 법으로 금지된 보르도 품종을 섞었다는 사건이다.

전자는 사람의 건강과 관련된 중대한 사건으로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후자는 매우 미묘한 문제다. 적발된 네 곳은 누구나 아는 대형 생산자였다. 그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카스텔로 반피(Castello Banfi)도 포함돼 있어서 놀라움과 동시에 ‘왜?’라는 의문이 생겼다. 카스텔로 반피 양조장에는 두 번 방문한 경험이 있다. 양조가는 매우 유능한 사람이고, 아시아 수출 담당 부장 미야지마는 일본에 올 때마다 밤새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오랜 친구다.

다행히 최근 시에나 검찰 당국이 와인을 조사한 결과 안티노리·프레스코발디에 이어 반피도 무죄임이 밝혀졌다. 나는 안심했지만 화도 났다. 반피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2003년산’의 발매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반피의 역사는 1970년대로 올라간다. 미국에서 이탈리아 와인을 수입·판매해 대성공을 거둔 마리아니 가문은 조국에서 와인을 만들고자 훗날 이탈리아인 최초로 국제양조가협회장을 지낸 에지오 리벨라 박사에게 그 꿈을 맡긴다. 77년 당시 우량기업이었던 포지오 알레 무라는 반피에 매각 의사를 밝혔고, 몬탈치노 지구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 리벨라 박사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78년에 반피가 탄생했다. 현재는 이탈리아 와인의 최고 등급인 D.O.C.G.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용 포도밭을 170㏊ 소유한 명실상부 최대·최고의 생산자다.

포도 선정부터 조심스럽게 다뤄지는 ‘카스텔로 반피’.

필자는 반피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를 좋아해 85년부터 매년 마시고 있다. 와인의 품질 향상을 위해 반피가 기울이는 열정과 노력은 정말 감탄스럽다. 예를 들어 숙성용 통에 쓸 목재를 산지에서 사들여와 야외에서 건조한다. 이렇게 하면 불필요한 수분은 날아가고 빗물이 나무를 씻어내 여분의 타닌이 제거된다. 이것을 가지고 자사에서 직접 통을 만든다. 또한 발효조도 대형 통 제조회사인 감바와 공동 개발했다. 동체는 오크(열전도가 느려 온도 변화가 천천히 일어난다), 발효조의 상부와 하부는 스테인리스(내부 청소가 용이해 위생적이다)인 최신식 발효조는 현재 특허신청 중이다.

반피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농축된 풍부한 과일 맛과 함께 고상한 쓴맛, 초콜릿·시가·바닐라 등의 맛이 골고루 남는 모던한 타입의 와인이다. 스캔들이 없었으면 2003년산도 이미 시음했을 텐데…. 하루빨리 2003년산 반피를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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