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칼럼>키스신이 없는 한국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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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좀처럼 키스장면을 볼 수 없다..지상에서영원으로'의 버트 랭커스터와 데버러 커가 해변에서 나누는 정열적인 키스,잉그리드 버그먼과 게리 쿠퍼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울리나'에서 보여준 첫 키스의 수줍음 같은 것 을 한국영화에서본 기억이 있는가.대신 우리 영화에는 상대적으로 성폭행이나 강간장면이 많이 나온다..꽃잎'.나에게 오라'.유리'.리허설'.
은행나무침대'.악어'등 올해 화제가 된 영화들만 살펴보더라도 키스신이 없거나 아주 짧은 대신 강간장면은 예외 없이 등장한다. 이는 우리의 성문화가 키스에 익숙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그렇더라도 이것이 강간장면이 많은 이유는 되지 못한다.키스가서로의 애틋한 감정을 교류하는 애정표현이라고 할 때 우리 영화에 키스신이 적고 강간장면이 많다는 사실은 .함께 나누는 성'이 아니라 남성의 일방적인 .정복으로서의 성'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기 때문은 아닐까.여성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영화속 강간에대해 남성들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것도 여성을 단지 성적 욕구충족의 대상,심지어 1회용 노리 개로 취급하는데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여성문화예술기획이 20~30대 여성관객 9백1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9.3%가 한국영화가 여성을 다루는 방식에 불만을 표시했다.이들이 올해 최악의 영화로선정한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를 한번 보자.여성을 한낱 맥주에 비유한 이 영화는 성에 대해 능동적이고 개방적으로 변한 여성들(대부분 커리어 우먼으로 설정돼 있다)을 조롱하고 희화화한다.이제 더 이상 순결한 처녀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내가 늘 처음 오픈하고'.상표 만 봐도 품질을 알 수 있는' 맥주가 차라리 낫다는 식이다.
문제는 이 영화가 한국의 대표적 중견감독 6명이 만든 옴니버스작품이라는 점이다.시대가 변하고 있는데도 사회적 정서를 책임져야 할 중견감독들의 성의식이 아직도 봉건적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서글프다.그들이 대변하 고 있는 한국남성들의 시대착오적 성관념은 가정에서는 아내 폭행으로,직장에서는 여직원 성희롱으로 이어진다.그래서 경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할 수준으로 올라섰으면서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여전히 개발도상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가장 히트한 .젖소부인'도 여성관객들이 가장 참을 수 없는 여성상으로 뽑혔다.남자들이 .젖소부인'.김밥부인'.자라부인'을 들먹이며 농을 주고 받을 때 여성들이 얼마나 심한 모멸감을 느끼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남 대중문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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