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출판] 맨몸으로 느낀‘은둔의 땅’미얀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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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menades en terre bouddhiste, Birmanie
(미얀마, 불교 나라에서의 산책)
Christine Jordis 지음, Seuil, 272쪽, 21유로

유럽에는 장막이 없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동·서 유럽을 양분하던 물리적인 장애물이 사라진 데 이어 지난 1일자로 유럽연합(EU)이라는 이름 아래 25개 국가가 하나로 묶였다. 국경선은 희미해지고 상대방에 대한 ‘물음표’는 사라지고 있다.

그런 유럽이 이제 동양으로 눈을 돌린다. 미지의 공간으로 남아 있는 동양의 베일을 벗기려 한다. 동양을 맛본 사람들 중 일부는 동양에 푹 빠져 있다.

프랑스 작가 크리스틴 조디스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자신의 작품에 삽화를 그려주는 사샤 조디스와 함께 동양을 찾아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자신은 글로, 사샤는 그림으로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2001년 『꿈을 꾸며, 발리와 자바로』라는 작품을 낸 데 이어 이번에는 『미얀마, 불교 나라에서의 산책』이라는 소설을 펴냈다.

서양인들의 동양에 대한 관심은 주로 문화 쪽이다. 불교같이 동양에 뿌리를 둔 사상에 대해 그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길을 보낸다. 프랑스만 하더라도 최근 불교 신자가 급격히 늘어 전체 인구의 1%인 60만명에 달한다. 최근 설문조사에서 가장 호감 가는 종교로 불교를 꼽은 사람이 8.3%나 됐다.

영문학 박사인 조디스는 동양문화와 만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자기가 살아왔던 곳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차분하게 그리고 있다. 현학적인 문체는 작품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꾸밈 없이 소박한 한 사람의 여행객이 되어 미얀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애쓴다.

그녀는 미얀마의 보통 사람들과 풍경, 그리고 자기를 매혹시키면서 동시에 자기를 의아스럽게 만드는 불교와 맨몸으로 만나기 위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관념의 장막을 다 걷어냈다. 그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세 번이나 미얀마를 찾았다. 그러면서 미얀마의 아름다움에 반해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자유가 억압되고 있는 미얀마의 정치적 상황에도 눈길을 돌린다. 미얀마는 노벨평화상을 받은 아웅산 수치를 연금하고 있는 나라다. 사원과 성지를 찾는 관광객들은 군부의 억압에 저항하는 민중의 소리도 듣고 싶어하지만 여행 가이드들은 입을 다문다.

미얀마는 지금까지 프랑스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도 주지 못하던 ‘백색지대’다. 이런 나라로의 여행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이 아주 쉽게 읽힐 수 있는 것은 작가가 불교와 이 나라의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디스는 기차와 버스·자전거를 이용하고 험한 산길은 걸어다니며 불교 성지와 사원을 샅샅이 뒤진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시장 구석구석까지 누비고 다녔다.

한 농아 소녀와의 만남은 그녀에게 충격이었다. 아직 열살도 안된 소녀가 그녀에게 손짓과 눈빛으로 입술에 바르는 루주와 향수를 요구했다.

엉겁결에 핸드백 속에 들어 있던 자신의 루주를 꺼내준 그녀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잠시 고민에 빠진다. 그러고는 미얀마가 서양엔 미지의 땅일지언정 이미 백지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연민이 목울대를 타고 넘어왔지만 그녀는 역시 상황 묘사만으로 자신의 감정 표출을 자제한다.

그녀의 여행은 계속된다. 배를 빌려 미얀마를 동서로 양분하는 이라와디 강에 몸을 맡긴다. 물이 가자는 대로 흘러가면서 그녀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은 채 바다로 바다로 흘러내려간다. 햇살에 반짝이는 수면과 귓가에 잔잔하게 들려오는 물소리, 그 속에서 그녀는 문득 자아에 대한 질문을 떠올리며 동양의 모태가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한다.

불교에 대한 그녀의 관심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미얀마에서 불교는 모든 것이다.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불교가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

그녀는 자신이 이방인임을 잊지 않은 채 철저히 불교에 빠져본다. 소설의 매력은 그녀가 취하는 이런 자세에서 나온다.

그녀를 유혹하는 동양의 빛과 빠지지 말라고 붙잡는 비판적인 지성 사이에서 그녀는 위태위태한 줄타기를 내내 계속한다. 감정 이입으로 서정성이 넘치는 풍경들이 미얀마 역사와 불교에 덧칠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거기에 그녀는 이따금씩 서양의 가치에 대한 성찰도 섞고 있다. 이 소설은 단순한 여행 이야기를 뛰어넘는다. 그것은 신비로운 것을 거리를 두고 관조하는 그녀의 능력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그것을 통해 독자에게 소설로 다가가고 있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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