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新엑서더스 그들이 해외로 나가는 뜻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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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초등학생부터 중년까지 모두 떠나고 싶어한다.어차피 정착민들은유목민을 동경하게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모두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니다.각각의 세대는 각각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10대 이하가 떠나는 이유는 명확하다.한국의 대학입 시가 그들을 내몰고 있다.공부를 잘하면 잘하는대로 영어를 확실히 익히기 위해,못하면 못하는대로 외국 대학 졸업이라는 간판을 따기 위해서다.초등학생들도 해외연수를 떠난다는 것은 이미 구문이 되었고,서울시 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고생 유학생 수는 58% 증가(총 1천2백55명)했다.
대 출국자의 대다수를 이루는 대학생(석사.박사 포함)도 학위취득이라는 명백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말하자면 20대 중반까지는,관광을 제외한다면.행복한 미래를 위한 준비'라는 확실한 실용적 목적을 갖고 떠나는 것이다.취직 시험을 겨냥 한 20대의어학연수도 이 범주에 든다.이들을 모두 묶어.준비파' 또는 .
실용파'라고 할 수 있다.
40대 이상이 떠나는 주된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게 없다.이 세대는 대개 돈을 웬만큼 번 다음 이제 인생을 즐기기 위해 가는.소비파',사업에 실패하는등의 쓴 맛을 보고 쫓기듯 떠나는 .도피파'로 나뉜다.
그러나 떠나는 30대의 이유는 간단치 않다.이들중 다수는.준비파'로 분류되기에는 너무 나이들어버렸고,.소비파'에 포함시키기엔 가진게 신통찮으며,도피하지 않으면 안될 이유가 뚜렷하게 있는 것도 아니다.이들은 그냥 떠돌고 싶어한다.미 래에 대한 걱정은 애써 유보하고,현재의 소비욕망은 억누른 채 신종 유목민이 되기를 자처한다.
마치 고의적으로 부적격자의 길을 걸으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일까. 이들의 성분을 보면 대개 대졸자에다 화이트칼라다.80년.광주'를 20세 전후에 맞았으며,스크럼 속에서 저항가를 부르며 20대의 일부를.탕진'한 기억이 있다.
이들의 진정한 공통점은 의식 밑바닥에 오롯이 남아 있는 이상주의의 잔해다.90년대의 개인주의와 쾌락주의에 전적으로 동화되기에는 80년대의 집단적 이상주의에 이들은 너무 깊이 감염됐다.동시에 그들은 그 이상주의가 자신의 일상을 억압 했다고 믿고있다.이상주의자에서 갑작스럽게 메마른 생활인이 되어버린 그들은정체성은 이상에서도,생활에서도 모두 증발해버린 것이다.80년대진보적 이론가의 한사람이었으며 지금은 대중음악비평가 또는 문화평론가라는 직함으로 글을 쓰고 사 는 신현준(34)씨의 말.“우리 세대 가운데 일부는 문화에서 상실한 이상에의 향수를 달랬다.그래서 문화론과 영화와 록에 주목했다.그러나 이미지와 관념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다.내가 떠난다면 그런 갈증 때문일 것이다.” **** * * 60년대 영.미의 히피세대들도이상주의의 포로이긴 마찬가지였다.하지만 그들은 음습한 골방에서엄숙한 이념을 학습하는 대신,마약과 록과 집단 생활로 자신들의과격하지만 소박한 이념을 체현했다.한국의 80년대 세대들처럼 이념과 생활세 계의 쉼없는 불화를 체험하지 않았다.“늙기 전에죽어버리고 싶다”고 노래하던(록그룹.더후') 그들은 늙어서 부랑자가 되거나 여피족이 되었다.“더 늙기 전에 떠나고 싶다”고말하는.늙어버린'한국의 30대들은 무엇이 되려는 걸까.
〈허 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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