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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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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혹자는 주식의 종류가 두 가지밖에 없다고 말한다. 오르는 주식과 내리는 주식이다. 좋은 주식, 나쁜 주식은 없다. 단지 언제 오르고 어느 정도 오르느냐에 대한 판단만 다를 뿐이라는 얘기다. 대표적인 장기 투자자인 오마하의 현인(賢人) 워런 버핏은 투자기간을 보다 길게 잡기 때문에 기본이 탄탄하면서도 현재 저(低)평가된 회사의 주식을 사놓고 오를 때까지 기다린다. 반면 단기간의 등락에 대해 투자하는 그룹으로 헤지펀드가 꼽힌다.

헤지펀드라는 개념은 1940년대 앨프리드 윈슬로 존스에 의해 처음 등장했다. 그는 당초 '헤지드 펀드(hedged fund)'라고 명명(命名)했지만 월가(街) 사람들은 그냥 헤지펀드라고 불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손실을 보지 않도록 등락(騰落) 모든 경우에 대해 회피수단을 만들어 놓아 '어느 경우에든 손실을 보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는 펀드다. 주가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면 나중에 주식을 살 권리를 매입해 이익을 내는 식으로 다양한 투자기법을 동원한다. 헤지펀드의 투자대상은 주식 외에도 환율.금리.원자재 등 가격이 움직이는 모든 시장이다.

헤지펀드가 금융시장의 약탈자.교란자로 낙인찍힌 것은 90년대 후반부터다. 가장 큰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조지 소로스는 동남아 금융위기를 야기한 장본인으로 비난받았다. 러시아 금융위기 때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운용한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가 파산위기에 처해 미국 주요 은행들에서 구제금융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헤지펀드'(아침이슬)의 저자 대니얼 스트래치맨은 헤지펀드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사실과 매우 다르다고 지적한다. 금융시장이 출렁거리는 것은 헤지펀드의 책임이라기보다 시장 자체의 문제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또 운용자의 돈까지 포함돼 있는 헤지펀드는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뮤추얼펀드보다 더 안전하다는 것이다. 최근 1년새 헤지펀드 규모가 4000억달러 이상 늘어난 1조1600억달러로 커졌다니 그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최근 전 세계 주가급락의 책임을 단기 투자자인 헤지펀드로 돌리는 분석이 많다. 국내 증시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헤지펀드는 시장의 약점을 파고들 뿐이므로 시장의 급변은 시장 자체의 책임이라는 스트래치맨의 주장이 훨씬 설득력있게 들린다.

이세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