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직무복귀] 대통령과 교감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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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대통령 직무정지 직후 청와대는 한동안 혼란에 휩싸였었다. 청와대 참모들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보고 범위가 모호했던 때문이다. 이를 정리해준 사람은 고건 총리였다.

高총리는 국회의 탄핵안 가결 사흘 후 박봉흠 청와대 정책실장이 첫 보고를 하러 가자 "앞으로 국정 연속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항은 대통령이 계속 파악할 수 있도록 하라"고 교통정리를 해주었다.

핵심은 북한 정세 등 안보 관련 정보였다. NSC 사무처는 이에 따라 보고가 아닌 '친전(親展)'서류의 형태로 盧대통령에게 일일 보고를 할 수 있었다. 盧대통령 또한 윤태영 대변인을 통해 "고건 대행 체제가 순항할 수 있도록 (청와대.정부가) 최대한 협력하라"는 당부를 했다.

청와대와 高총리의 가교역할을 했던 朴실장은 지난 2개월간 물밑으로 가장 분주했던 인사였다. 청와대의 월요일 수석.보좌관 회의 결과를 高총리에게 보고했다. 국무회의와 부처 업무보고에도 배석했던 朴실장은 관저의 盧대통령에게 세상의 흐름을 전했다. 주 채널을 정무.의전 기능이 강한 비서실장보다 정치색이 엷은 정책실장으로 지명한 것도 高총리의 신중한 판단이 아닐 수 없다.

이즈음 高총리가 청와대 수석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논리를 펼쳤다. "요즘 비행기는 자동항법장치가 있어 이착륙 때만 조종사가 필요하다. 나머지는 자동장치에 의해 가게 돼 있다"는 얘기였다. 청와대 핵심 참모는 "盧대통령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과 로드맵(일정표)에 의해 안정적인 과도기 운행을 할 것이라는 메시지였다"고 말했다.

공사 졸업식을 앞둔 高총리가 "연설문은 청와대 것을 써라"고 지시했다. 총리실 보좌진이 그러나 高총리 화법에 맞게 원고를 수정했다. 高총리는 "원본을 가져오라"고 하더니 단 두 글자만 고친 뒤 청와대 연설문을 그대로 읽었던 일도 있었다.

직무정지 대통령과 대행 총리의 원만한 2개월의 동거야말로 '몽돌(盧)과 받침대(高)의 조화'였다는 여권 내 평가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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