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드라마 ‘바람의 화원’서 열연 배우 류승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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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에서 김조년 역을 맡아 열연 중인 류승룡은 “천민으로 태어나 조선 최고의 큰손이 된 김조년은 정주영 회장 같은 대단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어쩌면 그는 이름을 들으면 곧장 얼굴이 떠오르는 배우가 아닐는지 모른다. 하지만 얼굴을 본다면 누구라도 ‘아, 이 사람!’ 할 만큼 친숙한 배우다. SBS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거상 김조년 역을 맡고 있는 배우 류승룡(38) 얘기다. 연극 무대로 데뷔해 영화 ‘열한 번째 엄마’ ‘황진이’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던 그가 지상파 드라마에 얼굴을 내민 것은 이번이 처음. 류승룡은 섬뜩할 만큼 냉철하지만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만은 한없이 약해지는 김조년의 이중적인 캐릭터를 실감나게 그려내 존재감을 뚜렷하게 빛내고 있다. “촬영 중엔 연기에만 몰입하고 싶다”며 고사하는 그에게 재차 인터뷰를 청했다.

새벽 촬영을 막 마친 터라 피곤이 그득한 얼굴이었지만 당장에 불호령이라도 할 듯한 김조년의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첫 안방극장 나들이가 고되지는 않을까. "영화나 연극과 달리 드라마는 매주 방영될 분량을 그 주에 촬영하는 게 보통이라 쉽지는 않죠. 그래도 지난해 ‘별순검’(MBC드라마넷) 촬영하면서 익숙해졌습니다.”

영화 ‘천년학’ ‘황진이’, 케이블 드라마 ‘별순검’에 출연한 데 이어 ‘바람의 화원’까지. 그는 시대극이나 사극을 유달리 좋아하는 것일까. “제가 한복이 잘 어울려요. 하하하…. 어릴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아 그런 것인지 시대물을 작업할 땐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 편해요.”

요즘 류승룡은 ‘바람의 화원’ 시청자들의 ‘공공의 적’이 됐다. 지난달 9일에 방영된 6회 분에서 신윤복(문근영 분)과 기생 정향(문채원 분)의 애틋한 사랑을 잔인하게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극 중 김조년은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정향을 2000냥에 사 자신의 집 별당에 가둔다. ‘닷냥커플’이라는 애칭까지 붙여주며 신윤복과 정향의 사랑을 지지했던 드라마 팬들은 방송사 인터넷 게시판을 ‘닷냥커플을 돌려달라’는 항의 글로 도배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악역 연기를 너무 실감나게 해 소름 돋는다’는 글도 있다.

그에게 김조년을 위한 변명을 부탁했다. “김조년은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예요. 천민 고아 출신에 맨주먹으로 조선 최고의 큰손이 되고 왕권에까지 세력을 뻗치잖아요. 지금으로 치면 정주영 회장님 같은 대단한 인물인 거죠. 예술 작품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졌고, 예술인들을 경제적으로 후원하기까지 하죠.”

하지만 방해가 되는 인물은 누구라도 호위무사 ‘설청’을 사주해 망설임 없이 죽이는 김조년은 악인임이 분명하다. 류승룡은 이전에도 악역을 맡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김혜수와 호흡을 맞췄던 ‘열한 번째 엄마’에서는 무능하고 폭력적인 아버지로, 영화 ‘황진이’에서는 황진이를 품기 위해 비열하고 위선적인 방법을 택하는 송도 부사로 분했다. “이유 없는 악역은 안 할 것 같아요. 겉으로는 나쁜 놈이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이해가 가는, 연민이 느껴지는 그런 역할이 좋아요. 김조년도, 제가 이전에 연기했던 역할들도 그래요.”

김조년이 정향에게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아마 동질감을 느껴서겠죠. 음악에 천재성을 가졌지만 천민이기 때문에 기방에서 한낱 꽃으로 썩어가는 정향의 모습에서 김조년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닐까요.” 극 중 김조년이 정향에게 반한 것은 그림 모델이 되기 위해 나신으로 신윤복 앞에 앉은 정향의 뒷모습을 목격한 때다. 사랑이라기보다는 남자의 정욕은 아니었을까. " 사실 정향의 가야금 소리에 반해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하다 만나게 되는 건데 촬영 관계상 표현이 잘 안 되었지요. 육체적 사랑이 아니라 정향의 영혼까지 사랑하는 것이 조년의 마음인데….”

중반부를 지난 ‘바람의 화원’은 어떻게 전개될까.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김조년이 꾸미는 음모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다 거대한 폭풍처럼 극 전체를 휘감을 거예요.”

‘바람의 화원’ 이후의 류승룡도 궁금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처럼 잔잔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 계속 웃음 짓다가 마지막에 진한 감동을 주는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연극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매체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연기할 겁니다. 악역이요? 진하고 선 굵은 악역이 들어오면 딱 한 번만 더 하고 안 하려고요. 하하하….”

이에스더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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