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프라를세우자>10.과천국립현대미술관-개선 여지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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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국립현대미술관 문턱이 높다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덕수궁 석조전 셋방살이를 거쳐 과천으로 옮긴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도심에서의 접근성을 비롯해 진입로 문제,대중교통과의 연계등 위치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미 술관측은“그동안 언론에서 지겨울 정도로 써댔으니 이젠 진입로 문제는 그만지적해달라”며“우리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과천으로 미술관 위치를 정한 것도 아닌데 계속 욕먹는 것이 억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난 10년동안 끊임없이.욕먹으면서도'개선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단순히 당초 잘못 결정된 위치 때문만이 아니라 미술관 행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예로 보아도 좋지 않을까.
전문가의 눈을 빌리지 않고 한사람의 관람객 입장에서 보아도 국립현대미술관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가장눈에 띄는 것은 역시 위치 문제.자가용이든 대중교통이든 어떤 수단을 이용해도 접근이 불편하다.자가용으로 간다 고 해도 진입로 입구에서 미술관 앞까지 15개나 되는 커브길을 3㎞씩 오르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간다면 더욱 기가 막힌다.1㎞이상을 걸어서 코끼리열차나 킹콩버스(5백원),아니면 리프트(2천원)를 타 고 진입로를 통과해야 겨우 미술관에 닿을 수 있다.임영방 관장은 올해초 지하철역에서 미술관까지 운행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지켜지지 않고 있다.
거리가 아무리 멀고 가는 방법이 아무리 힘들어도 미술관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면 그것으로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다.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국내 단 하나뿐인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모든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찾을만한 매력 을 별로 갖고있지 못하다.
가장 큰 문제는 소장품 상설전시에 있다.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있는 미술품은 모두 3천6백여점.이 가운데 현재 6백50여점이미술관 1층의 원형전시실1과 2,3층에 있는 3~6전시실에 나뉘어 상설 전시되고 있다.1층에 붙어있는 미술 관 안내 패널에보면 원형전시실1은 국제현대미술,5전시실은 1900년부터 60년까지며,3.4전시실은 그 이후부터 현대까지의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하지만 직접 전시실에 가보면 소장품을 어떤 기준으로 분류해 걸어놓고 있는 지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혼란스럽다.원형전시실1을 먼저 들어가보자.전시장 입구의 안내문에도 적혀 있듯.국내외 장르 구분없이'작품이 나열돼 있다.드뷔페의 조각을 가운데 두고 스텔라.도널드 저드등 시기와 나라,유파에 관계없이 작품이 진 열돼 있다.원형전시실 외곽에 주로 놓인한국작가 작품의 경우도 마찬가지.전혀 맞지않는 작품들이 뒤섞여어떤 작품도 빛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 전체 예산 66억원 가운데 16억원을 작품구입비로 사용했다.돈을 들여 좋은 작품을 컬렉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작품들을 엮어 한 나라의 현대미술사를 정리해 보여주는 연구작업 역시 국립현대미술관의 역할임에도 이런 전문성은찾아보기 어렵다.단순히 벽을 메우기 위해 작품이 걸려있는 것이아닌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한 미술사가는“현대미술관 상설전에는 작품정리가 전혀 돼있지 않고 작품이 그냥 널려있는 것”이라며“외국인들에게 한국 근대미술을 설명하려고 해도 작품과 작품 사이의 맥이 연결되지 않는다”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최은주 학예연구관은“지난 3월 기존 상설전시의 70%를 교체했다”며“아직 완벽히 정리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근대미술사 맥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근대미술을 보여주는 5전시실을 정비하는등 정리가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연간 10여건에 달하는 기획전도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미술관 관계자들은 인정하려들지 않지만 많은 미술인들은“가서볼 전시가 없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멀어서만이 아니라 볼것이 없어서 미술관을 안 찾는다는 얘기다.임관장 취임후 만든.올해의 작가전'이나.젊은 모색전'등 국내전은 작가선정을 둘러싸고일부 잡음도 있었지만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이에 비해 외국전은 별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학예연구직들의 해외출장이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서 관장 개인취향이 많은 영향을 미치는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미술관 안내는 고사하고 관람객이 있든 없든 끼리끼리 모여 잡담이나 하고있는 미술관 전시실 안내원들도 미술관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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